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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살려면 대기업 많아져야

namsarang 2010. 9. 11. 21:46
[오늘과 내일/박영균]
 

중소기업 살려면 대기업 많아져야

 

 

대통령 선거 때마다 중소기업 공약이 춤을 추었다. 정치인들이 중소기업 공약을 내거는 것은 표가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약 300만 개로 전체 사업자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인원은 1000만 명을 넘어 전체 고용의 88%에 이른다. 중소기업 종사자 1000만 명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대다수 국민이 중소기업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정책을 펴겠다는 말에 유권자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급조되는 공약이 대부분이다.

정책 넘치는 만큼 약효는 없다

선거가 아직 먼데도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직접 중소기업 오너의 의견을 들은 데 이어 다음 주에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날 계획이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 방안에 반영해 이달 안에 발표할 것이라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은 과거 정부 때도 추진됐던 것이다. 예전에도 청와대로 대기업 중소기업 관계자를 불러 대통령 주재 회의를 열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번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따로 불러 만난다는 것이다. 좀 더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얼마 전 상생정책에 관한 중소기업 측 토론회에서도 큰 기대를 거는 중소기업인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중소기업 정책이 넘쳐나는 탓에 중소기업인들은 식상한 모습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중소기업청을 비롯해 각 시도에 나가 있는 지방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지원센터에 이르기까지 지원기관도 많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저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너무 많다 할 정도다.

 

중소기업 지원예산도 많아졌다. 1996년 전체 예산의 2.8%인 2조4000억 원에서 작년에는 4% 선인 11조9000억 원으로 늘었다. 지자체들마다 수천억 원씩의 중소기업 예산을 쓰고 있으니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 지원을 늘리겠다는 공약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지원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사용됐거나 정치적 포퓰리즘에 휘둘려 남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공약을 늘릴 것이 아니라 지원정책을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한 중소기업 정책을 골라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이 금융위기 이후의 고환율 정책으로 덕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이라는 존재로 인해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경우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대기업이 사라지면 중소기업의 몫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25%의 중소기업이 굶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잘 되려면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대기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이웃 중국이 잘살게 된 이유도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이 많아진 덕분이다.

불공정 관행 다스리고 규제 풀라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 할 일은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철저하게 다스리는 일이다. 법과 규제가 미비해 있다면 서둘러 보완할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중소기업이 많다. 대기업 오너 친척에게 밀려 하루아침에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제외되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중소기업은 보호되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 중소기업을 옥죄는 규제도 풀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참여를 막기 위해 대기업이 정부에 로비해 만든 까다로운 규제도 사라져야 한다. 의료 교육과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는 중소기업의 신규 참여를 가로막는 전봇대 규제가 아직도 많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상생 발표보다 정부의 규제완화를 더 바라고 있을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