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은 집사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에 나오는 집사, 곧 관리인은 인간을 가리키고 부자 주인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갖고 계시는 풍요로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그 풍요로움을 인간 모두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인 관리인은 주인의 것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당연히 여깁니다. 그래서 주인 뜻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기 위해 몰래 쌓아둡니다. 이 비유와 관련해, 바오로 사도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주님 종이며,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하는 관리인이기에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1코린 4,7-8).
복음에 등장하는 집사의 문제는 주인 자리에 자신이 앉아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받은 은총들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자신이 애써 얻은 것이라 여겨 세상의 임금이 된 듯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집사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을 만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집사는 현명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자신을 위해 한 일이지만, 자신이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나누고 분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주는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세상 재물도 그 재물의 본성대로 사용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재물의 본성은 필요에 따라 나누고 움직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사는 재물의 이런 본성을 비로소 깨달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를 보장받게 된 것입니다. 집사는 자신의 삶이 뿌리째 흔들릴 때, 자신에게 닥친 삶의 위기를 "어떻게 하지?"(루카 16,3)하며 반성하고 대처해 나갔습니다. 그런 삶의 성찰은 약은 집사에게 이제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합니다. 세상을 약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렇게 현명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데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명한 삶의 답은 명확합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특히 우리 순교자들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는 순교자들 후손이며, 그분들이 피로써 지킨 신앙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순교자들은 끊임없는 고통 중에도 주님 사랑을 증거하셨고, 그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갖고 사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순교자는 원래 증거자란 뜻입니다. 생명을 바쳐 주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칠 만큼, 증거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 '고문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침묵과 내면의 갈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순교 성인들도 죽음을 기다리는 감옥 안에서 이러한 내면으로부터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유혹에 더 많은 고통과 갈등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의심과 갈등이 더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교자들은 이런 의심과 갈등의 유혹을 주님 사랑으로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해도 주님 크신 사랑에 비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의 목표를 자기 자신의 성취에 둬서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결국은 소멸해 가는 자신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과 성취를 주님 안에 두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은 모든 것의 완성을 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며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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