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주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많은 군중을 돌아보시며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제안하십니다.
첫째,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둘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마지막으로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가족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과 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좀 더' 모으고 벌어야지 하며 살아간다고 단정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마저도 버려야 하고 더구나 십자가까지 짊어져야 한다고 제안하십니다. 그러니 제자의 여정, 아니 신앙의 여정이란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비유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 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이 비유에 나오는 탑이란 세상 사람들이 그 안에 계속 쌓아두고 지키고 싶어하는 부와 행복을 나타냅니다. 인간 역사란 하늘에 까지 닿는 가장 높은 탑의 건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탑에 자신의 소유 뿐 아니라 하느님도 가둬버립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도 세상 권력과 소유의 도구들을 얻기 위한 탑을 쌓으려 세상과 경합을 벌이는 유혹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뿌리에는 항상 좋은 의미의 선한 사용과 효율적인 복음 선교라는 명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과 유일한 힘이 십자가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때로는 잊어버리고 헛된 가치들을 얻으려고 총력을 기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세상에 주님 십자가를 증거하려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지, 세속적 능력과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님의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것을 쌓는 가치 기준이 다릅니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께서 광야에서 거절하셨던 그 유혹들(루카 4,1-13)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가치들을 이용할 때 그 방향이 옳은 것인지 항상 깊이 식별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작한 신앙의 여정은 이해타산을 헤아려 그만 둘 수는 없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께서 소유에 대한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인은 소유욕이 강한 어느 수도자에게 수도생활을 올바르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면, 윗옷을 벗고 맨 몸에 생고기를 매단 채 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라고 충고했답니다. 수도자는 성인이 시킨대로 하고 마을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자 등 뒤에 매달린 생고기 냄새에 마을의 온 개떼들이 수도자를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후에 돌아 온 수도자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로 찢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안토니오 성인께서 이렇게 가르쳐주셨답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부를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한다면, 사탄이 그것으로 분열과 시기의 전쟁을 일으켜 영적인 마음을 이렇게 모두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에 나오는 두 임금이란 서로 대립하는 하느님과 사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평화협정은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루카 4,7)하는 말을 기억하게 합니다. 강력한 임금처럼 보이는 사탄은 사람들이 탑 안에 축적하고 싶어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반면에 사람을 섬기는 임금인 주님의 종과 같은 삶은 너무나도 미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미약해 보이는 약한 삶에서 주님의 놀라운 힘이 완전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10).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거룩한 영을(지혜 9,17) 받지 않고는 하느님의 뜻, 아니 이 세상일조차도 잘 알 수 없는 미약하고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의 참된 힘은 자신의 미약함에 있습니다. 자신이 약하다고 믿기에 주님을 믿고 의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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