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 첫째가 꼴찌 되는 실수 범해선 안돼

namsarang 2010. 8. 22. 12:29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 첫째가 꼴찌 되는 실수 범해선 안돼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복음말씀은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주님은 구원받을 사람들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의미는 다름 아닌 주님과의 형식적 관계가 아니라, 긴밀한 내면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주님과 함께하는 회개의 여정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과거의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주님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서는 삶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애써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그만 두려고 해도 되풀이 되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인정하며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나약한 처지를 한탄하는데서 방향을 전환시켜 주님의 자비에 맡기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이 바라는 '악'에서 방향을 전환해 주님께서 바라는 '선'으로 향하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행동을 늘 정당화시키고 변명의 구실을 늘어놓는 것에서 방향을 전환해 주님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희망하며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들어가야 할 문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 여정을 걸어가듯이, 주님은 우리가 누구나 당신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삶에 지치고 절망한 사람, 되풀이 되는 죄 때문에 주님 앞에 서기가 합당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자신 스스로를 판단하고 자신만이 삶의 주인공으로 착각하고 사는 모든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다만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두드림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의지와 필요성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문 밖에 서 있을 것입니다. 문 밖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 밖의 세상이 주는 사라질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두드림은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두신 용서와 자비의 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넓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좁은 문을 제시하십니다. 아마 문이 좁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들어가기에 좁다는 뜻일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문은 들어가기에 결코 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삿짐 옮기듯 많은 것을 등에 지고 손에 움켜쥐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비좁을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겨 가져가고 싶어 하는 가치들이 오히려 문에 걸려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삶의 주인공이라는 교만, 자신만이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자만, 그런 장애들을 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이 바로 좁은 문일 것입니다.
 
 더욱이 그 문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며 열려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문이 닫히는 때가 오면, 사람들은 문 밖에서 외칠 것입니다.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루카 13,25).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은 아담을 부르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하고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주님을 피해 두려워 숨기만 했습니다. 주님이 애타게 찾으면 찾을수록, 우리는 주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제 주님이 우리를 더 이상 찾지 않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 말씀 안에서, 주님 성찬례 안에서, 주님을 안다고 변명해도 주님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과 필요에 따라서만 주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우리는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픈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준다는 사실을 희망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