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는 그가 쌓은 재물 때문이 아닙니다. 재물이 삶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들여다보면,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루카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산 부자를 연상케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비단 재물뿐 아니라 그것을 움켜진 채 자신이 향유하고 싶은 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모습에서는 남을 배려하거나 돌보는 마음이 희박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그럴만한 시간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자신의 생명을 위한 시간은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창조와 더불어 시간은 주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그 시간을 주님과 형제들을 위해 나누고 배려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창조의 시간을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창조 때부터 주님은 우리를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시간조차 없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만날 시간, 자녀들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 어렵고 아프고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형제들을 찾아 볼 시간이 없는 이기적인 자신이 돼갑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2-3).
탐욕은 일을 완성하는 추진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탐욕은 끝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려고 곳간을 헐어내고 더 큰 곳간을 짓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할 것입니다(루카 12,18-19). 세상에서 자신의 재물을 점차 늘려가는 일이 삶의 모든 것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경고를 생각나게 합니다.
"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예레 2,13).
탐욕은 축복의 원천인 주님을 잊게 하고, 더 나아가 주님 자리에 자신이 앉아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더 갖고 움켜쥐기를 원하는 탐욕이 주님 사랑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1)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은 재물을 모으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모은 재물을 어떤 가치로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재물이 당신 은총이기에 그것을 혼자 독점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형제들을 위해 나눠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깨어 살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당신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풍요로움은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며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유산을 선물로 남겨주듯이 말입니다. 유산을 선물로 남겨주신 아버지 마음은 자녀들 간의 불목과 분쟁이 아니라 서로를 보살펴 주는 사랑의 유대를 간직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녀들은 세상을 향한 탐욕으로 인해 하느님 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잊고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깊은 속마음을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진정 부유한 삶이 어떤 것인지 시편 기도자의 기도를 묵상하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인간은 한낱 그림자로 지나가는데 부질없이 소란만 피우며 쌓아 둡니다. 누가 그것들을 거두어 갈지 알지도 못한 채. 그러나 이제 주님,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시편 3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