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 자비를 체험합니다. 나병환자를 치유한다는 것은 그 병이 보여주듯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병환자 치유는 불가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삶에서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넘기에는 매우 어려운 여러 장애에 부딪히곤 합니다. 같은 처지에 있던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이런 고통스럽고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넘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구원을 위해 주님께 매달리면서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직접 부르는 구절은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루카복음에는 이후로 두 번 더 예수님 이름이 직접 언급되는데, 예리코에서 소경이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라고 하는 호소와 십자가상 우도(右盜)의 기도에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라는 청원에서 나옵니다. 사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호소하는 경우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주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주님께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최고 의회에서 증언할 때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주님의 이름 자체가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힘이며 믿음의 대상인 것입니다.
특히 나병과 같은 악성 피부병은 공동체에 끼칠 수 있는 전염성이나 발병 원인 때문에, 그 병에 걸렸다고 판단된 사람은 격리시켜 일반 주거지역에서 떨어져 살도록 했습니다(민수 5,2). 그래서 나병환자들은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소리 높여 외쳤던 것입니다(루카 17,12).
나병이 지니는 이런 성격 때문에, 주님의 치유는 육신적 치유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죄의 표지를 허무는 행위입니다. 나아가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구별하는 모든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치유 불가능한 병이 나았다는 사실 뿐 아니라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믿음이 있다면, 주님을 통해 그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목이 마를 때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한 잔의 물이지만, 더 근본적 문제는 물이 샘솟는 원천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치유 받았지만 결국 1명만이 주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는 비유가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10명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는 바로 신앙인 전체를 말합니다. 구원이 이미 우리 삶 안에 가까이 와 있지만,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차동엽 신부가 최근 출간한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책에 보면,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믿음에 대해 내리신 정의, 곧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을(Deum) 믿고, 하느님에게(Deo) 믿고, 하느님께로(in Deum) 믿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믿음 대상이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곧 하느님 존재를 믿고, 하느님 성품과 구원경륜을 믿는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 다음 하느님에게 믿는다는 말은 전적으로 하느님 초대와 인도하심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즉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믿음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로 향해 믿는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로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올인(all in)한다는 뜻이다. 곧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탁하고 희망한다는 고백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병환자의 외침은 주님을 믿고 희망한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 외침으로 나병환자는 고통으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비로소 열게 되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을 경멸하던 고통이 함께 계시는 주님 자비의 손길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2티모 2,9)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혹시 피하고 싶은 이웃들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닫고 그 안에 갇혀있다면, 주님 자비의 말씀이 결실을 맺도록 그 이웃들을 향해 한결같은 자비를 갖도록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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