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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안젤리코 (1400 ~ 1455. 2.)
Title: Saint Anthony the Abbott Tempted by a Lump of Gold, c.1430 Number of Photos: 1
이탈리아의 화가. 도미니크수도회 수도사. 본명은 조반니 다 피에졸레 (Giovanni da Fiesole). 피렌체 근교 비쿄 출생. 일생을 경건한 그리스도 신앙의 표현에 헌신하였다고 하여 ‘베아토 프라 안젤리코(축복받은 天使修道士)’로 불렸다. 20세 때 피에솔레의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얼마 후 종문분규(宗門紛糾)로 코르토나수도원으로 옮겨 10년 가량 코르토나와 포리뇨, 그리고 피에솔레 등지에서 지낸 다음, 1436년 피렌체의 산마르코수도원으로 옮겼다.
초창기의 그림은 로렌초 모나코의 고딕풍에서 출발하여, 성서의 삽화와 템페라의 판 그림에 빛나는 듯한 색채와 꼼꼼한 세부묘사를 보였다. 그 후 도나텔로와 마사초 등의 영향으로 양체표현(量體表現)과 원근법을 터득하고, 1433년의 《리나이누올리의 성모(聖母)》 (산마르코수도원)와 1435년경의 《그리스도강탄(降誕)》 (산마르코수도원)에서는, 자연의 직접적인 관조에서 비롯된 듯한 풍경묘사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산마르코수도원의 일련의 벽화에서는 프레스코화법을 채택, 그 제약과 특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주제의 본질을 파악한 단순화와 입체적 구도에 조형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었다. 1445년, 교황의 소명(召命)으로 로마로 가, 바티칸궁 니콜라우스 5세 예배당에서 그린 여러 벽화는 로마 고대건축의 장대함을 보여주는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이 밖에 《수태고지》 《별의 성모》 《최후의 심판》 《동방박사들의 경배》 등의 작품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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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c. 1387-1400, died 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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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르네상스 시대 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프라 안젤리코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신부로서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입니다. 그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로 널리 알려진 것은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인 코렐라의 도미니코 신부가 그를 '천사 같은'(angelic) 화가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신심 깊은 삶에서 우러나온 영성적인 체험이 녹아든 것이었기에,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거룩한 것을 관상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는 수도자로서의 성덕과 화가로서의 재능이 조화롭게 결합된 것이었습니다.
[생애] 140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비키오(Vicchio)에서 태어난 안젤리코는 1417년에 형 베네데토(Benedetto)와 함께 피렌체의 한 필사본 작업장에서 일했는데, 이때 형은 필사가로, 안젤리코는 채색 화가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20세에 피에솔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신앙심 깊고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기도 생활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때 안젤리코는 조반니 다 피에솔레(Giovanni da Fiesole)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1436년부터는 그의 절정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생활하였습니다. 1445년에는 교황의 부름을 받고 베드로 대성전의 경당과 바티칸 궁내에 있는 경당 및 교황의 개인 경당에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습니다. 재능 있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안젤리코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청렴한 생활을 했던 그는 당시 교황이 그를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자, 다른 신부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하였습니다. 1450년경 피렌체로 돌아가 약 2년동안 피에솔레 수도원장을 역임하였고, 1453년경 다시 로마로 왔다가 이곳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455년 2월 18일에 숨을 거두어 산타 마리아 델라 미네르바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1960년에 시복되었으며, 1984년에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작품 세계] 안젤리코가 화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는 피렌체에 르네상스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장식적이고 우아한 고딕양식의 영향과 보다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성서와 성인의 이야기를 다룬 교회적인 내용이 주된 주제였으며,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위하여 제단화를 비롯한 많은 종교적인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안젤리코는 그림을 통해 예수를 더욱 충실히 전달하려했고, 자신이 묵상하고 체험한 종교적인 영성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일련의 변화를 보였는데, 초기에는 등장인물의 의상 등에 나타난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황금색의 사용 등 고딕적인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인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명암법, 단축법, 원근법에 매우 충실했고, 당시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등 르네상스 시기의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젤리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438~1445년,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작업한 그림들에는 급격한 변화를 보입니다. 색채는 극히 제한되고 구성은 단순해지며 배경묘사도 사라진 압축적이고도 간결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수도자들의 명상과 기도를 돕기 위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에서 안젤리코는 건축과 회화를 조화시킨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수도원 북쪽 복도에 그려진 [예수 탄생 예고]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빛에 의한 효과를 극대화하였으며, 프레임을 그려 넣어 2차원의 벽에 3차원적인 환영을 부여하여 그림이 조각처럼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화면 전면에 가로로 세워진 기둥들은 15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고린토 양식의 주두인 반면에, 대각선으로 세워진 기둥은 산 마르코 수도원 건축에 실제로 사용된 이오니아식 주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탄생 예고가 이루어진 곳이 성서에 기록된 대로 나자렛에 있는 마리아의 집인 동시에 수도원이라는 것을 이중적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통하여 수도자들에게 순명의 자세를 지닐 것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로마 시기 작품은 산 마르코 수도원 시기의 단순함과 소박함에서 벗어나 건축적이고 웅장해졌으며, 구성면에서도 한층 탄탄해진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종교적인 주제전달은 물론, 형식과 공간 탐구에 탁월하였던 안젤리코는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를 제자로 두었으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등 그의 뒤를 따르는 피렌체의 많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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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고지 1438년경, 190 x 164 cm,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프레스코화 |
프라 안젤리코(Angelico, Fra)는 이탈리아 피렌체 화가로 피에솔레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가 작품 제작에 힘썼고 후에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거의 신비적인 영감으로 작품들을 제작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모두 종교화이며 작퓸에 등장하는 인물은 성화된 인간으로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누가복음 제 1장의 장면을 그린것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마리아에게 나타나 "당신이 한 아이를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라고 고하는 장면이다.
반원형과 정방형을 조합시킨 화면에 천장 궁륭이 곡선으로 교차되고 천사는 경쾌한 자세로 마리아 앞에 서 있으며 성모 마리아는 경건한 몸가짐으로 천사를 맞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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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술현장] 이름없는 시골구석 수줍음 많은 처녀처럼
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이층 계단을 오르면 옛 수도원 수사들이 쓰던 독방들이 복도 양켠에 늘어서 있다. 하루의 노동과 기도를 갈무리하고 고단한 육신을 눕히는 침소의 크기는 두 평 남짓. 요 한 장 깔면 탁자 하나 들어갈 자리도 빠듯하다.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가는 빈방 안에는 가구 한 점 없이 덧문을 씌운 서너 뼘 크기의 창문 하나가 전부다. 벽과 천장은 회백색.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경건한 수도자의 향기에 이끌려 누구나 목마른 영혼이 되고 만다. 멀리 대성당 종루의 종소리가 귓전을 울릴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 문의 빗장을 여미고 하루만치의 축복을 감사하며 돌 바닥에 무릎꿇는 가난한 수사가 된다.
동료수사 방에 그려
프라 안젤리코. `천사 신부님'이란 뜻이다. 얼마나 사랑스런 영혼을 소유했기에 그런 별명을 얻었을까? 세속명은 귀도. 묵주와 붓을 같이 들었던 그는 동료 수사들 방마다 돌아가며 조그마한 프레스코 벽화를 한 점씩 그렸다. 바사리의 기록을 보면 그는 기도를 올리지 않고 붓을 드는 법이 없었고, 그림을 그릴 때면 더운 눈물이 솟아올라 그의 깡마른 뺨을 적셨다고 했다. 한번 그린 그림에다 다시 손대서 고치는 일도 없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자신의 붓을 인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모든 미술을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몰아치며 피렌체 시민들에게 불을 뿜는 듯한 설교를 뱉어냈던 `신의 채찍' 사보나롤라조차도 오직 안젤리코의 그림만은 가장 신성한 진실에 가깝다고 고백했다. 복도머리 왼쪽 몇 번째 방에선가 걸음을 멈추니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 잉태의 기적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붉은 옷, 붉은 날개의 천사가 흰옷 입은 마리아에게 다가선다. 천사의 옷 그림자에 성처녀의 옷섶이 새삼 물들었다. 가슴이 제대로 부풀지 않은 여린 몸매지만 다문 입술이 야무지고 오똑한 콧매가 강고하다. 밝은 이마 아래 빛나는 눈빛도 침착하다. 낯선 존재의 난데없는 출현과 예기치 못한 예고에 누군들 이만큼 침착할 수 있을까?
기도서를 손에 쥔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에 몸을 낮추었다. 두 팔을 엇접어서 가슴에 모은 자세는 겸손과 순종을 뜻한다. 기독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마리아가 이때 취하는 다섯 가지 반응, 곧 놀람, 사색, 반문, 순종, 은총 가운데 `순종'의 계기가 선택되었다.
장식 없이 정갈하게
이 그림에는 여느 그림과 다르게 이상한 데가 있다.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말고는 아무 장식도 없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순결을 뜻하는 흰 백합과 투명한 물병, 빛살의 파도를 타고 날아드는 성령의 비둘기, 금빛 광휘에 휩싸여 이들을 굽어보는 성부의 모습도 그림에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 새들의 지저귐이 침묵하고 바람도 부푼 입을 다물었다. 마리아의 차림새도 수수하다. 늘 입던 진청색 겉옷도 눈부신 장식솔기도 없다. 헐렁한 속옷 한 벌이 전부다. 가죽 신발도, 머리에 드리우는 베일도 벗었다. 옥좌도, 휘장도, 발아래 황금빛 자수 방석도 치워냈다. 마리아에게는 이런 장식들이 하나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안뜰이 내다보이는 수도원 회랑의 마리아는 영광스런 천상의 여왕이라기보다 이름 없는 시골구석 수줍음 많은 처녀처럼 보인다. 안젤리코는 1500년 전 나사렛에서 있었던 만남의 기적을 한 시골 처녀의 겸손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도원 고적한 회랑 풍경을 순결한 태중의 작은 우주로 바꾸어 그렸다. 세상 죄악을 속량할 어린양을 점지받은 마리아는 표정과 자세가 더없이 진지하다. 신성과 인간의 만남을 이보다 간절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기쁜 소식 전하는 천사의 간곡한 기품과 말없이 순종하는 성처녀의 즐거운 헌신을 이보다 정갈하게 헹궈낼 수 있을까? 안젤리코는 천사의 영혼을 소유한 화가였다고 한다.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살아있는 주님을 영접합니까? 그렇지 않다. 마리아
천사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베, 마리아.” 아베는 `안녕'이란 뜻이다.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을 보고 몹시 놀랐다고 한다. 라벤나의 페트루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천사의 모습은 더없이 달콤했으나 천사의 말씀은 더없이 끔찍했다. 천사의 모습을 보고 기쁨에 넘쳤던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을 듣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낯선 이가 불쑥 찾아와서 곧 태중에 아기를 가질 거라고 말한다면 소스라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내 두려움을 진정하고 되묻는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를 다그치는 마리아의 당찬 질문을 두고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연한 반응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건 천사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표현이 아니라 처녀성의 순결한 서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야고보 외경은 루가 복음서에 빠진 내용을 수록한다. 성령 잉태의 예고를 듣고 나서 마리아가 하느님이 혹시 인간으로 변신하여 자신과 동침하는 게 아닌지 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살아 있는 주님을 영접하여 이 세상 여인네들과 같은 방식대로 아기를 가지게 된다는 뜻인가요?” 천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루가 복음서는 천사의 대답을 이렇게 기록한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말 성서 번역이 조금 어긋났다. 라틴 성서의 표현은 `옵움브라비트 티비'. 다시 옮기면 이렇다. “그렇지 않다, 마리아. 주님의 기운이 너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러나 빛의 존재이신 하느님이 그림자로 변신하다니? 성 베르나르두스는 그 까닭을 이렇게 풀이했다. `비물질적인 신성이 인간의 몸을 가진 마리아에게 깃들기 위해서', 그리고 `마리아의 몸이 신성을 감당하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미술사가 노성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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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 안젤리코 > , (Il Beato, Fra Angelico, 1400-1455)
"수태고지”, 1438-1446/50년경, 산 마르코 수도원의 기숙사 계단 상부에 있는 프레스코화,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이태리
“수태고지”, 1441년경, 제 3호실 프레스코화, 176 x 148cm,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이태리
“리나이우올리의 마돈나”(Triptych of Linaiuoli)”, 1433년,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이태리
3-1 “북치는 천사”, 마돈나를 둘러싼 12명의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중 3-2 “탬버린 연주하는 천사”
프라 안젤리코는 1427년 27의 나이에 도메니코회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와 그의 조수들은 피렌체에 있는 도미니코회 수도원인 산 마르코 수도원의 예배당, 식당, 회랑, 기숙사 방등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제단화를 그렸다. 각 방에는 창문이 하나씩 있었으며 신성한 세계로 향하는 창문의 의미로 프레스코가 하나씩 그려졌다. 수사로써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바로 그림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서 할 점은 안젤리코의 작품에 구현된 종교 체험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이다. 도미니코 수도회가 산 마르코 수도원을 되찾아 건물을 건축할 때 그와 조수들이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화 연작(1438-1447)은 이 공동체의 정신 생활과 종교 규칙에 기초한 신앙의 표현인 동시에 그 신앙으로의 인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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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파[Scuola Fiorentina] |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14세기 초부터 16세기 중기까지 르네상스미술의 주류를 이룬 건축·조각·회화의 유파.
특히 회화에서는 주지적 합리주의와 조형적 형태주의가 그 특징이다. 피렌체회와의 전성기는 14세기 전반 G.치마부에를 이어 조토 디 본도네가 신선한 현실감각으로 전통적 중세회화와 결별하고 비잔틴양식을 극복하여, 주제에 관련이 있는 것만을 단순화하고 또 이를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간구성은 화면안의 통일이다>라는 고딕과는 다른 형식의 회화를 만든데서 비롯되며, 이를 더욱 발전시킨 사람이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로 그보다 1세기후에 등단한 마사초였다. 이 전통은 장식적인 시에나파와 대립하여 14세기 이탈리아 회화의 2대 조류를 이루었다. 건축가 F.브루넬레스키가 기하학적인 투시도법을 발견하여 이것이 마사초의 벽화와 도나텔로의 돋을새김〔浮彫〕에 도입된 뒤부터 회화적 현실의 표현에 신천지를 개척하였다. 피렌체파의 성과는 메디치가(家)의 번영에 힘입어 르네상스회화 발전의 주류가 되었으며 기하학적 원근도법에서 볼 수 있는 합리적·지적 경향은 15세기 예술의 주류를 이루는 자연주의를 형성하였다.
조각가 L.기베르티는 그의 저서 《평론집》에서 미술가에게 필요한 학문으로 해부학을 들고 있는데, 자연과학 발흥과 더불어 A.베로키오 · D.기를란다요 · A.폴라이우올로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미켈란젤로 · I.로소 피오렌티노 등은 인체묘사 · 운동묘사·풍경묘사 등으로 회화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16세기에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해져 S.보티첼리의 후기작은 이러한 경향을 나타내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사실주의를 완성하면서부터 주관적 정신을 그 속에표현하였다. 미켈란젤로는 강인한 인체 표현속에 인간의 정신적고뇌를 표현하였는데 그 초월적 방향으로서 바로크양식의 선구자가되었다. G.바자리는 저서 《미술가 열전(列傳)》에서 피렌체 미술발전요인으로서 미술가들이 범용(凡庸)한 것과 모방에 만족하지않고 풍부한 탐구심으로 자기 스타일을 찾으려 한 정신과 이것을 가능하게 한 이 도시의 자유로운 비판정신을 들고 있다.
피렌체파 작가로는 15세기 전반에 활동한 마사초 이외에 P.우첼로 · 프라 안젤리코 · D.베네치아노 · A.카스타뇨 · F.F.리피 등과 후반에 활동한 폴라이우올로 형제, A.발도비네티 · 보티첼리 · F.리피 · 기를란다요 등이 있다. 16세기에는 미켈란젤로 · F.바르톨로메오 · 안드레아델 사르토 등에 이어서 J.폰토르모 · A.브론치노와 같은 마니에리슴화가가 피렌체 회화 말기에 등장하였다.
▣ Angelico 안젤리코, Fra 1400?∼1455 이탈리아 ▣ Botticelli 보티첼리, Sandro 1445∼1510 이탈리아 ▣ Domenico Veneziano 베네치아노 ?1400∼1461 이탈리아 ▣ Masaccio 마사초 1401∼1428 이탈리아 ▣ Michelangelo 미켈란젤로, Buonarroti Simoni 1475∼1564 이탈리아 ▣ Uccello 우첼로, Paolo 1397∼1475 이탈리아 ▣ Verrocchio 베로키오, Andrea del 1400∼1461 이탈리아 ▣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1452∼1519 이탈리아 ▣ Baldovinetti 발도비네티, Alesso 1425∼1499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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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400-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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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예수 탄생 예고 Annunciation,1430-32, 템페라,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Number of Photos: 1 of 41 |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Gallery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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