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게시판

이번에도 북한 세습을 도울 것인가

namsarang 2010. 10. 14. 23:04

[배인준 칼럼]

 

이번에도 북한 세습을 도울 것인가

 

 

명박 정부가 북한의 3대 세습 과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대통령은 어떤 그림을 갖고 있는지, 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지, 대북 상황 관리의 리더십시스템은 확고하고 치밀하게 작동하는지, 자유민주 체제로의 통일을 위한 다각적 조직적 실질적 노력은 심화되고 있는지, 이도 저도 없이 지켜볼 뿐인지. 1980년대와 90년대 초, 김정일 체제로의 2대 세습 안착을 방조한 셈이 됐던 패턴을 반복할 것인지.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세습의 대내외적 역풍을 뚫기 위해 기도할 모험에도 대응해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가 아니라 남한 급변사태를 획책하는 극단적 도발까지 대비해야 한다. 설혹 북한 급변사태가 김 부자의 자책에 의해 현실화되더라도 미국의 등 뒤에서 중국의 선처만 기다려서는 상황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어렵다.

시계를 1980, 90년대로 잠깐 되돌려보자. 1988년 2월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을 자행한 북한에 적극적인 유화책을 폈다. 88 서울올림픽을 2개월 남짓 앞두고는 북한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천명한 7·7선언을 했다. 이는 북방정책의 확대와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북의 도발에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1990년대 을 위기에서 구한

북한이 대남 대화에 매달린 것은 1990년이었다. 당시 북한 수령 김일성과 장남이자 후계자 김정일은 절박했다. 적화() 대상인 한국은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다 올림픽의 성공 등으로 국가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돼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것을 비롯해 동유럽 공산독재정권이 줄줄이 무너졌다. 1990년 9월에는 북한의 절대적 후견자였던 소련이 한국과 수교했다. 김일성 부자는 위기 탈출을 위해 한국으로부터 기본적인 정권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급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1990년 9월 제1차 남북 총리급 회담이 열렸다. 양측은 1991년 12월 5차 회의에서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1992년 9월 정식으로 발효시켰다. 노태우 정부는 이를 큰 치적으로 자부했다. 남북 양측이 이 합의를 성실하게 준수했다면 김대중 김정일 간의 6·15선언이나 노무현 김정일 간의 10·4선언보다 훨씬 호혜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화해 협상을 하던 바로 그 무렵 핵무기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그리고 기본합의 내용을 시도 때도 없이 위반했다. 올해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은 그 결정판이다. 북한은 1990∼92년 한국과의 대화 국면, 그리고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로 시간을 벌면서 핵 개발에 몰두해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실험을 했다. 이제는 수소폭탄 개발까지 호언한다.

1990년대 초 남북 총리급 회담의 실무자로 참여했던 어느 인사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코너에 몰렸기 때문에 대남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합의가 필요했습니다. 역대 남북 대화 중에서 북한이 가장 절박하게 합의를 애걸했던 회담이었습니다. 북측은 우리의 주문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점을 활용해 북한을 더 밀어붙여 동서독 방식처럼 구체적 사업실행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쪽은 분위기에 너무 들떠 있었습니다.”

남쪽이 대화에 취한 사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권력 승계 작업도 마무리해 1993년 4월 국방위원장 자리를 인계인수함으로써 2대 세습을 완성했다. 그리고 김일성은 이듬해 7월 사망했고,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김정일 김정은 간의 3대 세습극이 1막을 열어젖혔다.

김정일은 22세이던 1964년에 조선노동당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고, 32세이던 1974년에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으며, 그 후 20년 가까운 권력 장악과정을 거쳐 세습을 완결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그야말로 어미 캥거루 주머니 속의 새끼 캥거루 같다. 이런 세습이 21세기 문명시대에 ‘코리아’로 불리는 한쪽 체제에서 연출된다는 사실은 남북과 지구촌의 8000만 한민족을 더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민족 모독이다.

한민족 모독을 지켜만 보자?

김정일 김정은은 무엇보다 2400만 북한 주민을 능멸하고 있다. 병든 김정일이 영양과잉 상태의 3남 김정은을 당대표자회와 열병식에 데리고 나와 혈족통치를 이어가려는 모습은 한편으론 안쓰럽다. 하지만 그가 주민들을 아들의 1000분의 1만이라도 걱정해왔다면 주민들의 고통이 이 지경은 면하지 않았겠는가 싶어 분노가 치민다. 북한 주민은 좋은 체제 아래에서라면 한국의 5000만 국민 못지않게 꿈을 이루고 풍요롭게 살았을 우수한 한민족의 일원이다.

더구나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 입으로 ‘김일성 조선’을 받들라고 강요한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세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