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⑫ 한일 新동반자 관계-기고
韓 日 미래지향 담론 넘어 ‘미래설계’ 행동으로 함께 나서야
일본은 한국에 껄끄러운 친구다. 마음을 푹 열고 대하기에는 가슴 한구석에 앙금이 남는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현상변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방위백서에 쓰고 중고생 교과서에 기술한다.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일본에 크게 손해 갈 것이 없는 줄 알면서도 농수산 분야에서 양보할 수 없다고 뒷걸음질을 친다. 하나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큰 그림을 그리고 한국과의 지역전략을 같이 짜기보다는 자기 이익에 급급해 작은 이해관계에 매달린다.
정치가가 주도하는 체제를 만든다고 하면서도 한일관계와 관련된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관료들의 변명을 넘어서는 통 큰 결단을 내놓지 못하는 게 현재의 일본이다. 20년간 일본 총리가 14명이나 바뀌었으니 정치가가 주도하는 대국적 판단을 내린다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은 민주화의 진통을 겪고 아시아 경제위기를 이겨내면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한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세계무대에서 일본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대로 자란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는 여전히 있지만 그 격차는 많이 줄었다. 일본이 한때는 한국이 본받을 성공모델이었지만 이제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 문제의 해결에 진통을 겪는 일본이 점점 집안 단속에 여념이 없는 반면 한국은 자신 있게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의 수를 보면 일본인이 2만5000명 정도인데 한국인은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의 인구가 한국의 3배인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이 10배 이상 차세대의 글로벌화 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1년을 채 못 견디는 일본 총리에 비하면 5년 단임이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정치적 안정성도 더 높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한 주도권은 한국이 쥐는 편이 낫다. 일본이 먼저 양보하고 일본이 앞장서서 행동하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은 이미 구태의연하다. 빠르게 결단하고, 의연하게 행동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은 한국이 더 강하다. 그런 한국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여는 새 지평을 개척하는 데 리더가 될 수 있다.
한일 양국 간 관계를 논할 때 많은 논자들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가자고 습관처럼 말한다. 하지만 미래지향이라는 말 자체가 과거사 중심형 사고에 묶여 있다는 증거다. 과거사 이슈가 단골메뉴로 등장하니까 시점을 미래에 두자는 소극적 화두가 미래지향이라는 개념이다. 21세기적인 한일 신동반자관계를 열려면 미래지향이라는 담론을 넘어서야 한다. 한일 양국은 미래를 지향할 때가 아니라 공동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한일관계는 서열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수평적인 동반자관계로 옮아가고 있고, 이질적인 국가군으로부터 동질적인 국가군으로 이행해 왔다. 소니와 삼성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만큼 한국도 성장했고,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에서 당당하게 이길 만큼 한국의 종합국력은 성장했다. 수평적이고 동질적인 관계로 이행한 한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의 넓은 잣대로 보자면 많이 닮은꼴이다. 얼굴 생김새나 외모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쟁과 식민지의 참화를 이겨내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점이 그렇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라는 점도 그렇다. 국제무대에서 아시아를 대표할 선두주자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국익만 고집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 함께 행동할 때 얻는 공동이익이 크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에서 재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한편으로는 끌어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해야 할 공동운명을 안고 있다. 미국과 거리를 두면 한일 양국은 고립하게 되고, 중국과 거리를 두면 양국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한미일의 외교안보 분야 장관급 인사들이 참가하는 한미일 안보협의체를 신설해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한편 한중일 경제사회 분야 장관급 인사들이 참가하는 한중일 경제사회전략대화를 만들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향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양면적 협력의 외곽이 아니라 중심에 선 한국과 일본이 각료회담의 정례화라는 방식을 창설해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는 바탕을 마련한다면 신동반자관계의 초석이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공적개발원조(ODA), 국제협력단의 운용 등에 있어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양국이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전략적으로 연대하면 국제공헌의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공통된 고민인 신에너지의 개발, 녹색성장 전략의 추진, 환경친화적 산업화, 국제금융시스템의 안정화 등에 대해 공동 출자 형식의 심도 있는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21세기형 발전모델과 신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지구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동아시아의 핵심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의 과거 100년이 불행한 역사를 끌어안고 살았던 시대였다면 미래 100년은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며 살아가는 시대여야 한다. 역사는 간단하게 청산할 수도 없고 손쉽게 망각할 수도 없는 기억의 산물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죄와 반성만을 받아내려 하기보다는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양국이 함께 이해하고 어려웠던 삶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역사화해의 지름길이자 양국 우호관계의 밑거름이다.
한일 신시대 동반자관계 개척을 위해서는 미래의 청사진을 공동 설계하고 이를 공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자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과 국제사회의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반자 관계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지도자의 용기 있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불가결하다. 한국은 피해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미래협력을 위한 화두를 던지고, 일본은 작은 데 연연하기보다는 대국적인 결단을 내릴 때 한일관계의 획기적 발전은 가능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정치학 교수
▼ 역사인식 논의 더딘 이유는 日, 교과서-과거 청산 별개로 인식▼
한일 간 선린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은 2001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설립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계기로 활발해졌다. 이는 광복 이후 정부 차원의 첫 ‘역사 대화’로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1, 2기를 거치며 약 6년의 활동을 마쳤지만 두 나라는 역사 화해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과정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 간의 신(新)동반자 관계를 위한 논의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역사 문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역사인식 문제가 진척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일본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과거사 청산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과서 문제 논의의 핵심은 과거사 인식 태도인데 일본은 침략과 그에 따른 반성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참여한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각국 위원회를 구성할 때 한국은 학계의 추천을 받은 반면 일본은 외무성에서 선정했다”며 “일본도 진취적으로 한일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학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적 실익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역사 대화는 한일 양국 국민 간에 깊어질 수 있는 감정의 골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은 충분하지만 일본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3기 활동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양국의 유네스코위원회가 역사 대화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독일과 주변국의 역사적 화해에는 유네스코의 활약이 컸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전후해 양국 유네스코위원회 주선으로 역사교과서에 대한 대화가 시도됐지만 일본 측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은 점도 또 다른 원인이다. 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맡았던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 대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해 70년 만에 공통 역사교과서라는 성과를 냈다”며 “독일이 전쟁 책임을 인정하는 상태에서도 신뢰 구축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호흡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학 |
정치가가 주도하는 체제를 만든다고 하면서도 한일관계와 관련된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관료들의 변명을 넘어서는 통 큰 결단을 내놓지 못하는 게 현재의 일본이다. 20년간 일본 총리가 14명이나 바뀌었으니 정치가가 주도하는 대국적 판단을 내린다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은 민주화의 진통을 겪고 아시아 경제위기를 이겨내면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한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세계무대에서 일본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대로 자란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는 여전히 있지만 그 격차는 많이 줄었다. 일본이 한때는 한국이 본받을 성공모델이었지만 이제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 문제의 해결에 진통을 겪는 일본이 점점 집안 단속에 여념이 없는 반면 한국은 자신 있게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의 수를 보면 일본인이 2만5000명 정도인데 한국인은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의 인구가 한국의 3배인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이 10배 이상 차세대의 글로벌화 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1년을 채 못 견디는 일본 총리에 비하면 5년 단임이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정치적 안정성도 더 높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한 주도권은 한국이 쥐는 편이 낫다. 일본이 먼저 양보하고 일본이 앞장서서 행동하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은 이미 구태의연하다. 빠르게 결단하고, 의연하게 행동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은 한국이 더 강하다. 그런 한국이 새로운 한일관계를 여는 새 지평을 개척하는 데 리더가 될 수 있다.
한일 신동반자 관계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을 바라보는 시 각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등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열강 속에서도 한일이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올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간 나오토 일본 총리. 동아일보 자료 사진 |
한일관계는 서열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수평적인 동반자관계로 옮아가고 있고, 이질적인 국가군으로부터 동질적인 국가군으로 이행해 왔다. 소니와 삼성이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만큼 한국도 성장했고,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에서 당당하게 이길 만큼 한국의 종합국력은 성장했다. 수평적이고 동질적인 관계로 이행한 한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의 넓은 잣대로 보자면 많이 닮은꼴이다. 얼굴 생김새나 외모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쟁과 식민지의 참화를 이겨내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점이 그렇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라는 점도 그렇다. 국제무대에서 아시아를 대표할 선두주자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국익만 고집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 함께 행동할 때 얻는 공동이익이 크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에서 재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한편으로는 끌어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해야 할 공동운명을 안고 있다. 미국과 거리를 두면 한일 양국은 고립하게 되고, 중국과 거리를 두면 양국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한미일의 외교안보 분야 장관급 인사들이 참가하는 한미일 안보협의체를 신설해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한편 한중일 경제사회 분야 장관급 인사들이 참가하는 한중일 경제사회전략대화를 만들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향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양면적 협력의 외곽이 아니라 중심에 선 한국과 일본이 각료회담의 정례화라는 방식을 창설해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는 바탕을 마련한다면 신동반자관계의 초석이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공적개발원조(ODA), 국제협력단의 운용 등에 있어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양국이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전략적으로 연대하면 국제공헌의 효과는 배가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공통된 고민인 신에너지의 개발, 녹색성장 전략의 추진, 환경친화적 산업화, 국제금융시스템의 안정화 등에 대해 공동 출자 형식의 심도 있는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21세기형 발전모델과 신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지구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동아시아의 핵심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의 과거 100년이 불행한 역사를 끌어안고 살았던 시대였다면 미래 100년은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며 살아가는 시대여야 한다. 역사는 간단하게 청산할 수도 없고 손쉽게 망각할 수도 없는 기억의 산물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죄와 반성만을 받아내려 하기보다는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양국이 함께 이해하고 어려웠던 삶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역사화해의 지름길이자 양국 우호관계의 밑거름이다.
한일 신시대 동반자관계 개척을 위해서는 미래의 청사진을 공동 설계하고 이를 공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자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과 국제사회의 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반자 관계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지도자의 용기 있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불가결하다. 한국은 피해자가 아닌 파트너로서 미래협력을 위한 화두를 던지고, 일본은 작은 데 연연하기보다는 대국적인 결단을 내릴 때 한일관계의 획기적 발전은 가능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정치학 교수
▼ 역사인식 논의 더딘 이유는 日, 교과서-과거 청산 별개로 인식▼
한일 간 선린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은 2001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설립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계기로 활발해졌다. 이는 광복 이후 정부 차원의 첫 ‘역사 대화’로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1, 2기를 거치며 약 6년의 활동을 마쳤지만 두 나라는 역사 화해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과정도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 간의 신(新)동반자 관계를 위한 논의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역사 문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역사인식 문제가 진척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일본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과거사 청산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과서 문제 논의의 핵심은 과거사 인식 태도인데 일본은 침략과 그에 따른 반성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참여한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각국 위원회를 구성할 때 한국은 학계의 추천을 받은 반면 일본은 외무성에서 선정했다”며 “일본도 진취적으로 한일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학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적 실익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역사 대화는 한일 양국 국민 간에 깊어질 수 있는 감정의 골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은 충분하지만 일본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3기 활동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실무적으로는 양국의 유네스코위원회가 역사 대화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독일과 주변국의 역사적 화해에는 유네스코의 활약이 컸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전후해 양국 유네스코위원회 주선으로 역사교과서에 대한 대화가 시도됐지만 일본 측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은 점도 또 다른 원인이다. 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맡았던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 대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해 70년 만에 공통 역사교과서라는 성과를 냈다”며 “독일이 전쟁 책임을 인정하는 상태에서도 신뢰 구축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호흡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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