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한류와 일류, 김치와 스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 지역에서는 세 집 건너 한 집은 일본 음식을 취급할 정도로 일본 음식의 인기가 높다. 스시(초밥)나 라멘이 많았던 2000년대 중반과는 달리 일본식 카레, 튀김, 가정요리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소녀시대' '카라' '포미닛' 등 한국 걸 그룹이 시들하던 한류 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걸 그룹의 데뷔 콘서트마다 입장권이 매진되는 사례가 속출하자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9시 뉴스에서 한국 걸 그룹의 인기를 톱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음반판매도 놀라운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8일 공식 데뷔한 '소녀시대'의 싱글 데뷔 앨범 '지니(GENIE)'는 발매 당일 일간차트 4위로 출발한 이후 데뷔 4주차인 10월 들어서도 일간차트 톱 10위권 내를 계속 지키면서 앨범 판매 10만 장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도쿄 긴자(銀座)의 야마노악기나 시부야(澁谷)의 타워레코드 등 대형 음반판매점들은 스타의 대형 포스터사진으로 도배한 K-POP(한국 대중음악) 코너를 별도로 설치했다.
일본에서는 K-POP이 주춤하던 한류(韓流) 붐의 명맥을 이어갈 것으로 평가한다. '겨울연가'와 욘사마에 빠진 아줌마 세대와 '대장금' 등 사극에 재미 붙인 중년 남성이 한류 1,2세대였다면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K-POP이 한류 3세대라는 것. 특히 한류 팬의 연령층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으로 확산되면서 기존 한류와 구분되는 '네오 한류', '신 한류'라는 조어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을 친밀히 느끼는 한류
1998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계기로 음식과 가요, 드라마가 대한해협을 가로지르며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03~2004년 일본 안방을 사로잡은 TV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 씨가 지난해 9월 문화기행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펴내자 책에 나온 코스를 따라가며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대중문화로 촉발된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와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인들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재일동포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도 줄었다. 일본내각부가 매년 10월 혹은 11월에 실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친밀감은 1997년 37.9%에서 2009년에는 63.1%로 크게 증가했다. 일본에서 7년가량 유학하다 2004년경 귀국한 동북아역사재단 이명찬 연구위원은 "일본인들은 한국을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다가 2000년대 들어 '겨울연가' '대장금' 등 TV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을 또렷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일본 지식인이나 재일동포를 협박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태도까지는 바꾸지 못하고 있다.
●문화 장르로 자리잡은 일류
한류가 충격파의 형태로 일본에 전해졌다면 일류(日流)는 가랑비처럼 한국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부터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전파됐던 만화와 애니메이션 외에 소설 음식 패션 드라마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차에 걸쳐 국내 지상파 방송부문을 제외하고 영화 비디오 음반 게임 방송 등 대중문화를 전면 개방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고, 일본 음식점에서 규동과 라멘을 즐긴다. 일본 대중문화 동호회의 인터넷 카페인 '일본TV'의 회원수는 47만 여명으로 미국 드라마 카페 '미드 영어자막…' 회원 수 21만 여명을 압도하고 있다.
이같은 민간의 문화교류는 정치 상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에서 망언이 나오더라도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즐기는 손님이 끊기거나 일본 소설 판매가 주는 일은 찾기 힘들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일본문화는 한국에서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문화교류는 갈등 후폭풍 완화하는 자양분"
사회 문화적 교류가 한일관계의 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류로 인해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역사나 소설, 사상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지 않다. 이 때문에 한류의 경제적 효과에만 치중하지 말고 한국의 역사와 문학 철학이 일본에서 출판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덕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동양사학)는 "대중문화나 한국음식 등 일본과의 교류는 아직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하고 "오에 겐자부로(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작가)가 말했듯이 전쟁체험 등 고난에서 우러나온 한국문학의 진지함은 일본 문학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류를 문화 우월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라멘을 먹으면서 일본문화가 우월하다고 인식하지 않듯이 일본인들도 대부분 한국 문화를 여러 문화 중 하나로 즐긴다.
문화교류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한영혜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 개인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문화교류의 필요성과 결과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화 교류를 통한 신뢰와 호감 쌓기는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갈등 이후 관계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자양분이 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한-일 대학생들, 교류활동 해보니…
“원폭의 고통도 일제의 만행도 같이 공감”
대학생 한일교류단체 대표들이 직접 보고 느낀 일본 젊은층의 역사인식과 한국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일까. 1986년 각각 설립된 한일학생회의와 한일학생포럼은 일본의 대학생 단체와 함께 매년 학술세미나와 문화교류활동, 역사현장 견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대학생 연합 동아리다. 두 단체의 대표로부터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 경험에 대해 들어봤다.
한일학생회의는 올해 8월 일본에서 일본학생들과 일본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의 증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본 학생들은 증언을 듣는 동안 대부분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울기까지 했는데, 한국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무덤덤했어요. 토론 시간에 일본 학생들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여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로서의 논리를 내세워 놀라기도 했죠." 한희조 한일학생회의 위원장(18·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1년)의 말.
한 위원장은 "한국 학생들이 '피폭자 개인적인 고통에는 공감이 가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제공한 침략전쟁이라는 원인을 빠뜨린 채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일본의 침략 사례를 이야기하자 일본학생들이 '우리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한 것 같아 부끄럽다'고 눈물을 비쳤다. 서로를 이해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일학생포럼도 올해 8월 일한학생포럼과 함께 한국에서 학술 심포지엄과 문화교류활동을 펼쳤다. 올해 심포지엄 주제는 내셔널리즘, 북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신지연 한일학생포럼 회장(23·이화여대 영문학과 4년)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대부분 학생들이 열린 사고를 갖고 있고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올해는 나눔의 집을 찾아가 일본 학생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마음으로 그 아픔과 역사를 이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두 단체의 회장은 "한일 양국 대학생들의 직접적인 교류는 왜곡과 불신을 극복하고 더 나은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일학생회의의 회원은 10여 명, 한일학생포럼의 회원은 20명이다. 적은 숫자이지만 이런 교류가 모여 한일 양국 이해의 기초가 된다는 믿음이다. 한 위원장은 "일본 학생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며 일한학생회의의 한 학생이 보내온 감상을 전했다.
"우리들은 태어난 장소도 , 자라온 환경도,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도, 합병(한일강제병합)에 대한 입장도 다릅니다. 그러나 여름회의를 통해서 우리들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슬픔을 공유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훌륭한 이론이나 의견보다도,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었습니다. 국적과는 관계없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국가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교류가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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