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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자료 엿봐서는 안 될 이유

namsarang 2010. 10. 26. 23:00
[오늘과 내일/홍권희]
 

과세자료 엿봐서는 안 될 이유

 
 


‘검찰이 18일 국세청을 압수수색했다’는 언론보도에 국세청의 비리 의혹을 떠올린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현동 국세청장은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이 영장을 갖고 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검찰이 수사에 필요하다고 해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온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과세자료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자금 수사를 하던 검찰이 영장 없이 삼성 임원 1000여 명의 과세정보를 국세청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 국세청이 세금 부과에만 쓰겠다면서 받아놓은 과세자료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면 어떤 납세자가 달가워하겠는가.

국회는 “과세자료를 내놓으라”고 국세청을 다그치기 일쑤다. 올해 국감에서도 검찰이 수사 중인 태광그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떠들썩했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자료를 요구했다.

국세청이 꺼내드는 방패는 국세기본법 제81조 13항(비밀유지)이다. ‘세무공무원은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1996년 말 추가됐다. 사회적으로 행정정보의 공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일반 공무원에 비해 세무공무원의 비밀유지 의무는 더 강화됐다.
 
서울고등법원은 1995년 특정 기업 세무조사 자료의 공개를 청구하는 소송에서 ‘국세청은 자료를 공개하지 말라’고 판결했다. ‘세무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납세자의 경영비밀이 유출돼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당국과 납세자의 신뢰관계가 무너져 세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논지였다.

민주당은 최근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세청에 장관 후보자의 과세자료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청문회 방해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세청이 자료를 내주면 법 위반이다. 다음번에는 민주당이 꼭 고발해서 법적 판단을 받아보면 좋겠다.

국회는 창끝을 계속 날카롭게 갈고 있다. 2006년 오제세 민주당 의원 등은 ‘국회 상임위가 의결로 요구하면 납세자 개인정보를 추정할 수 없게 가공한 과세정보를 제공한다’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고 이는 올해 1월 시행됐다. 오 의원 등은 지난달 ‘상임위가 아닌 의원이 요구할 수 있고, 상임위가 요구하면 개인정보까지 포함된 과세정보를 제공한다’고 바꾸자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인의 과세정보를 보호하는 방패는 조각난다. 국회 상임위의 결정만으로 특정인, 특정 기업의 세무조사 자료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여야는 상대방의 약점을 찾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무자료를 뒤지려 할 것이다. 군사기밀도 공개되는 국회에서 세무기밀 정도는 ‘조세정의’라는 명분 아래 외부로 흘러나갈 가능성이 99%다.

개별 과세정보 공개와 관련된 논란이 우리는 10년이지만 미국은 100년이다. 정보공개가 가장 활발한 미국은 공개와 비공개를 오가다가 1976년 납세정보 비밀보장을 위한 법체계를 확립했다. 내국세입법전(IRC) 6103조항에 따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비밀유지가 가능한 방식으로만 의회 등에 정보를 제공한다.

국세청은 개별 납세자의 비밀은 지켜주되 국세통계를 더 과감하게 제공해야 한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국세청은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 같은 미시적인 통계자료정책연구용으로 폭넓게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청() 44년을 넘긴 장년() 국세청이다. 통계 309건을 담은 ‘국세통계연보’ 뒤에 숨지 말고 국세행정 전반을 토론과 연구대상으로 올려놓기 바란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