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윤]
건보 낭비적 지출에 ‘메스’를 들자
건강보험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달부터 건강보험 적자가 하루 최대 100억 원씩 발생하고 올해 적자 규모가 1조 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더구나 올해 말에 적자에 대비한 적립금은 건강보험 지출의 반달 치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비 증가로 하루 100억씩 적자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왜냐하면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신약과 같은 값비싼 의료기술로 인한 의료비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낭비적 지출구조라는 중병을 건강보험이 오래전부터 앓았기 때문이다. 의료비 증가를 유인하는 행위별 수가제, 병원의 병상 증설이나 값비싼 의료장비 도입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 무정부적 상태, 주치의제도의 부재가 낭비적 지출구조의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낭비적 지출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국민 의료계 정부 간의 사회적 합의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하다.
건강보험을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다음과 같다. 국민이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정부는 국민이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의료계는 국민의 소중한 보험료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낭비적 지출구조 개혁을 수용하는 내용이다. 국민이 기꺼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은 국민이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병원비 보장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90%로 올리고 병원비가 아무리 많이 나오더라도 국민이 병원비를 100만 원 이상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병원비 ‘본인부담금 상한제 100만 원’을 보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료계는 국민을 과중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으로 몰아넣는 비급여를 없애는 일, 포괄수가제 및 총액계약제 도입, 주치의제도 도입과 같은 건강보험 지출구조 개혁을 수용해야 한다.
국민 의료계 정부가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건강보험이 앓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정부가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닌 대증요법을 쓸 경우 국민과 의료계 모두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쓸 수 있는 대증요법은 모두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방안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건강보험 수가를 인하하거나 진료비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이는 의료계의 심각한 반발과 함께 병원이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비급여 서비스를 과잉 제공하는 일과 같은 왜곡된 행태를 유도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환자 병원비 부담을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 역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국민이 생기고 특히 ‘없는 사람’이 더욱 큰 피해를 볼 것이다.
국민-의료계-정부 한발씩 양보를
지금 우리 건강보험이 중병을 앓기는 하지만 아직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면 그로 인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과 국민 및 의료계가 겪을 고통은 급속하게 커질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에게 큰 비용 부담 없이 치료를 받도록 만든 성공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 의료계 정부 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재정적자를 낳은 낭비적 지출구조를 슬기롭게 개혁하고 건강보험을 지속가능한 제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김윤 서울대 교수 의료관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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