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나라 결딴낼 거짓 불감증

namsarang 2010. 11. 3. 22:44

[오늘과 내일/박제균]

 

나라 결딴낼 거짓 불감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줄곧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계속 속일 수는 없다.”

진리처럼 인용되는 링컨의 이 말에 나는 요즘 회의를 느낀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아직도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믿지 못한다’는 국민이 30% 정도다. 천안함 사건 발생 7개월이 지났지만, 어림잡아 1000만 명도 넘는 국민이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가까운 친구마저 “기자니까 알겠지. 천안함 사건, 진짜 북한이 한 거 맞냐”고 넌지시 물어보면 목구멍 깊은 곳부터 탁 막히는 느낌이 올라온다.

소행 자인해도 안 믿을 것

천안함 사건의 진실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거짓선동이 불러온 촛불사태부터 미네르바 사건과 타블로의 학력 진위공방,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발언 거짓말 논란에 4대강 사업 진실 공방까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거짓 주장에 이렇게 휘청거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게, 아니 규명된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게 2010년 한국의 비극이다.

가정이지만, 북한이 “천안함, 우리가 침몰시켰다”고 시인한다고 치자. 그래도 ‘남북한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등 음모론을 제기하며 못 믿을, 아니 안 믿을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거짓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풍토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선 남에게 ‘거짓말쟁이(Liar)’라고 했다간 사생결단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거짓말쟁이’와 연관된 변변한 욕조차 없다.

파리 특파원 시절 아들딸의 학교 급식비로 한 아이당 두 달에 500유로(약 75만 원)가량을 냈다. 프랑스는 급식비 부담액이 소득에 따라 1∼5등급으로 구분돼 있다. 나는 가장 고소득자가 내는 5등급으로 분류됐다. 프랑스인은 소득의 절반 이상이 노후 연금액 등으로 공제된다. 따라서 명세서에 찍혀 나오는 소득은 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급식비를 아끼려고 소득액을 줄여서 신고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멀쩡한 대기업의 주재원들, 비교적 성공한 현지 자영업자들까지 그랬다. 한국인들이 소득을 어떻게 신고하든 프랑스 당국은 믿는다. 소득액을 고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소득신고서를 위조해서 제출하는 건 프랑스인은 상상하지 못한다. 자기들이 안 하기 때문에 남이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하는 것이다.

단, 프랑스 사회에선 이런 거짓이 드러나면 매장 당한다. 우리는 어떤가. ‘아니면 말고’다.

거짓보다 무서운 거짓 불감증

2002년 대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이른바 ‘3대 의혹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데 3대 의혹은 대선이 끝난 뒤 모두 ‘뻥’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46.6%)와 노무현 당선자(48.9%)의 득표율은 박빙이었다. 사실상 거짓말이 역사를 바꾼 셈이다.

그럼에도 이 허위폭로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이들에겐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이러니 거짓말은 ‘남는 장사’가 된다. 누구나 쉽게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여기에 면책특권이란 든든한 외투까지 입었다면 ‘일단 내지르고 보자’는 한건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우리는 성과를 내면 거짓도 눈감아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서 거짓보다 무서운 거짓 불감증을 키웠다. 거짓 불감증 사회는 촛불사태에서 보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제라도 ‘팩트’를 추상()같이 존중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백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해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