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 12일 오전 5시 10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수술실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장윤석 박사가 이끄는 시험관아기특수클리닉팀이 국내 최초로 시험관 아기 출산에 성공한 것이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시험관 아기는 각각 몸무게 2.63kg(여아)과 2.56kg(남아)의 이란성 쌍둥이였다.<
사진> 불임 부부에게 희망을 준 것으로 우리나라 산부인과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쓴 것이다. 올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에드워즈 박사가 1978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햄병원에서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지 7년 만이었다.
당시 팀장이었던 장윤석(79) 서울대 명예교수는 "1년여 동안 44쌍의 부부를 상대로 거듭된 도전과 실패 끝에 이뤄냈던 '44전 45기'의 성공이었다"고 했다.
국내 산부인과 의사들이 시험관 아기 연구에 몰두한 것은 영국에 이어 미국이 1981년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뒤였다. 하지만 기술 이전은 쉽지 않았다. 많은 의사들이 영국·미국 등에 가서 1~3개월간 단기 연수를 통해 기술을 배우고 실험실 연구에도 매달렸다. 1983년 서울대병원에 '시험관팀'이 구성된 뒤 1984년부터는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에 들어갔다. 장 박사는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진용·문신용·김정구 박사 등 연구진은 이후 우리 불임 시술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성공 뒤에는 병원장 재량으로 무려 7만달러의 연구비를 대준 이영균 당시 서울대 병원장과 난자 배양 기술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오선경 박사(생물학) 등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장 박사는 "쌍둥이 중 누나는 현재 교직에 있고, 남동생은 군 제대 후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남매의 경우 고등학교 진학 때까지 '시험관 아기'란 이유로 주변에서 조롱을 받을까봐 신원을 철저히 숨기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험관 시술 능력은 이후 급속히 발전해 1987년엔 차병원이 동양 최초로 난소 없는 여성의 임신이 성공한 데 이어 1988년에는 세계 최초 미성숙 난자의 체외 배양 임신 성공, 유리화 난자 동결 보존법 개발(1998년) 등의 기록을 세워나가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선 150여개 의료기관에서 연간 1만여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