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국산 맥주
1947년 OB맥주 영등포에서 첫 생산
국내에서 최초로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 12월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한 서울 영등포의 조선맥주(지금의 하이트맥주) 공장<사진>에서 만든 것은 일본 맥주인 삿포로였다. 국산 상표를 붙인 맥주는 해방 이후에 처음 나왔다. 초창기 맥주 생산에 쓰인 보리와 호프 등 맥주 원료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식 술 문화의 효시(嚆矢)라고 할 수 있는 맥주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이다. 개항 이후 서울과 부산 등 항구에는 러시아·일본 등 각국의 상인들로 들끓었는데, 이들 개항지에 일본인 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일본맥주가 흘러들어오게 됐다.
국내에 맥주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1910년 한일합방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 맥주시장의 맞수였던 다이닛폰맥주(대일본맥주)와 기린맥주는 식민지인 한반도의 맥주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한반도에 맥주소비가 늘어나자 운반비, 각종 세금을 줄이고 만주시장까지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한반도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서양식 술 문화의 효시(嚆矢)라고 할 수 있는 맥주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이다. 개항 이후 서울과 부산 등 항구에는 러시아·일본 등 각국의 상인들로 들끓었는데, 이들 개항지에 일본인 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일본맥주가 흘러들어오게 됐다.
국내에 맥주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1910년 한일합방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 맥주시장의 맞수였던 다이닛폰맥주(대일본맥주)와 기린맥주는 식민지인 한반도의 맥주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한반도에 맥주소비가 늘어나자 운반비, 각종 세금을 줄이고 만주시장까지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한반도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이들 두 일본 맥주회사는 서울 영등포 인근에 나란히 맥주공장을 지었다. 영등포 인근의 한강물이 수질이 좋고 수량이 풍부해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회사 설립시기는 다이닛폰맥주가 조금 빨랐다. 1933년 8월에 다이닛폰맥주가 조선맥주를 설립했고, 기린맥주가 설립한 소화기린맥주는 넉 달 늦은 그해 12월이었다. 소화기린맥주 출범에는 고(故) 박승직 두산 창업주가 소액주주로 참여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두산그룹은 1952년,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당시 맥주는 상당한 고가품으로 인식돼 선물용이나 서울 명동, 무교동의 요정·바·카페에서 주로 소비됐다고 한다.
회사 설립은 조선맥주가 조금 빨랐지만 첫 국산 상표 맥주 탄생은 소화기린맥주공장에서 나왔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이 공장은 1947년 2월 27일에 동양맥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OB(Oriental Brewery)맥주' 상표로 국산 맥주를 처음으로 생산했다. 맥주 원료는 수입했으며 국산 원료로 만든 맥주는 1957년에 처음 나왔다.
한국 최초의 맥주회사 조선맥주도 미 군정 관리하에 있다가 1952년에 민간으로 경영권이 넘어와 이듬해인 1953년에 '크라운맥주' 상표를 붙인 국산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판매량이 조선맥주가 많았으나 1957년 OB맥주가 역전한 뒤 1995년 다시 조선맥주 뒤를 이은 하이트맥주가 재역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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