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한미FTA 협상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namsarang 2010. 12. 8. 22:49

 

한미FTA 협상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업계는 조기타결 만족… 정치권이 된다 안된다 할수 있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집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FTA 협정의 주인공은 관련 업계와 상공인들이다. 그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안 된다’고 얘기할 게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사진 더 보기
“요즘 담배가 너무 늘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7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9층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담배부터 찾았다. 그는 “3년 8개월 전 한미 FTA를 처음 타결했을 때보다 이번 추가협상이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두 번이나 ‘한미 FTA는 잘못 태어난 아이인 모양’이라며 협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며 “그때마다 미국 협상팀이 만류하며 요구 수위를 낮추곤 했다”고 치열했던 협상 분위기를 소개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직후인 미묘한 시점에 한미 FTA 추가협상을 꼭 해야 했느냐는 비판도 있는데….

“협상장에서 연평도 같은 안보 문제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 미측 대표도 연평도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했다. 이번에 타결이 안 되면 중간선거 결과로 미국 의회가 공화당으로 바뀌게 되고 내년 3월까지는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다. 2012년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내년에 FTA 비준이 진행되려면 올해 안에 협상을 끝내야 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치지 않겠다’고 했던 말을 바꾼 셈이 아닌가.

“만약 어느 나라라도 ‘FTA를 수정하자’고 한다면 나는 또다시 ‘재협상은 절대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협상 전략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말을 바꾼 셈이 됐다. 국민에게 죄송하다. 말을 바꾼 데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면 책임지고, 사과하라면 100번이라도 사과를 하겠다.”

 

 

―유럽연합(EU)도 재협상을 하자고 나올 가능성은 없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한미 FTA 내용이 한-EU FTA에 영향을 주려면 그 서명 시기가 한-EU FTA의 발효 시기(7월 1일)보다 늦어야 한다. 발효 이후 서명된 새로운 FTA에 더 좋은 내용이 있을 때만 반영되는데, 한미 FTA는 내년 상반기에 서명될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을 것이다.”

 

―이번 추가협상에 대한 미국 측 분위기는 어땠나.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에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정치적 처지가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본인의 실망이 컸고, 여론의 질책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FTA를 타결해야 야당인 공화당을 끌어들일 수 있고, 업계의 호응도 이끌 수 있다. 또 무역을 통해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미국의 처지를 봐서 타결시켰다는 말인가.

“이 협정의 주인공은 업계와 상공인이다. 국내 관련 업계에서 ‘빨리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번 타결 내용에 대해 양돈협회에서는 ‘고맙다’고도 했다. 듣기 어려운 말이다. 협정의 주인공이 ‘이 정도면 됐다. 빨리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된다’ ‘안 된다’ 얘기할 게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추가협상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이번 협상에서 두 번 (협상을 깨려고) 일어섰다. 합의해 가는 과정에서 의견이 좁혀져야 하는데, 둘째 날 관세 철폐 기간을 2015년까지 대체로 맞췄지만 미국 협상팀이 백악관을 다녀온 뒤 ‘2017년 카드’를 꺼냈다. 그래서 그만두자고 했다. 또 한 번은 관세환급제 폐지와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계속 요구해서였다. 그때 ‘자유무역을 논의하자는 것이지 보호무역을 하자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따졌다.”

―서울에서 회의한 후 20일도 안 돼 미국에 갔다. 분위기가 어떻게 달랐나.

“미국에 가기 전에 돼지고기에서 양보해 달라고 의견을 보냈다. ‘도저히 어렵다’는 답이 왔다. (많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실제 회의에서 미국의 요구수준은 서울 회의 때보다 많이 낮아졌다. 특히 서울 회의 때 강하게 요구했던 자동차 세제, 쇠고기 부분은 입도 안 열더라.”

―미국 측이 왜 쇠고기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보나.

“추가협상이 끝나자 미국육류수출협회는 ‘한미 FTA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마지막에 미국 행정부에 ‘더 노력해 달라’고 하긴 했지만 더 요구하다가는 소탐대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도 ‘한국에 쇠고기 수출을 늘리겠다’고 말을 뱉으면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김 본부장은 서울 협상 때 미국이 쇠고기 수입 개방뿐 아니라 15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한 40% 관세도 기간을 단축하자는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한국 협상팀은 서울 협상 때 ‘Beef(쇠고기)’라는 단어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거나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대답조차 안 하는 철저한 ‘무시전략’을 취했다. 이 때문인지 미국은 이번 추가협상에선 쇠고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농산물에서 우리가 더 요구했어야 하지 않았나.

“3년 반 전에 맺은 원문을 보면 고추 마늘 양파 참깨 등 대부분 농산물의 관세 철폐를 10년 이상씩 미뤄 놨다. 쌀은 아예 제외했다. 농산물은 사실상 손댈 게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농산물을 요구하면 미국은 자동차에 추가해 더 큰 요구를 했을 것이다.”

―타결되겠다는 느낌을 언제 받았나.

“목요일(2일) 오후 늦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미국 측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 연기를 2017년에서 더 당기겠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양보하겠다고 하고, 복제약 특허 건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한 번 풀리니까 한꺼번에 문제가 해결됐다.”

2일 오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김 본부장이 “바람이나 쐬자”며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함께 호텔 앞을 산책했고 이 산책길에 패키지 딜(일괄타결)이 이뤄졌다.

―동아일보가 통상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이익의 균형을 맞췄느냐’는 질문에 10점 만점에 5.3점이란 낮은 점수를 줬다.

“점수가 낮으면 FTA를 맺지 말았어야 했나. 지금 산업계에서는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2004년 칠레와 FTA를 발효했을 때도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 6년이 지난 지금 칠레와의 교역은 엄청 늘었다. 당시 반대했던 분들이 지금 무슨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미국 측은 한국 협상팀을 어떻게 평가했나.

“미국 측은 나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 커크 대표는 ‘한국 인사 여러 명을 찔러 봤더니 한국 자동차는 안 그래도 잘 팔리는데 좀 양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당신은 한국사람 아니냐’고 하더라. 국익이 걸린 문제는 협상하는 사람 말고 나머지 관계자는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2007년 협상 당시 서울에서 ‘폭탄주’를 함께 마셨던 양국 협상팀은 이번엔 지난달 8일 서울 협상 첫날과 미국 협상 나흘째인 3일 저녁 간단한 맥주 파티가 전부였다. 양국 실무자들은 “이제 협상도 끝났으니 서로 얼굴을 다시 보지 말자”는 뼈 있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부는 무엇이었나.

“미국에 가기 전에 인사하러 갔다. ‘당신 역량을 믿으니까 소신껏 하는데 (이익의) 균형을 잘 맞춰라. 미국도 상당한 준비를 할 것이다’고 했다. 사실 상당한 부담이 됐다. 하지만 협상 중에 대통령과 통화하지는 않았다. 사전에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었고 (협상에서 양보할 폭에 대해) 위임을 받아서 갔는데 미국의 대부분 요구가 위임받은 범위 내에 있었다.”

김 본부장은 오후 8시경 인터뷰가 끝나자 비서진에게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 같은 제대로 된 밥을 먹자”고 했다. 추가협상 내내 라면으로 끼니를 주로 때웠고, 이날 점심도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