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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수 있는 건 행복한 특권

namsarang 2010. 12. 10. 22:44

[동아광장/임형주]

 

나눌 수 있는 건 행복한 특권

 

 

얼마 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렸던 6·25전쟁 60주년 기념 독창회 때문에 뉴욕을 방문했다. 지금 이 칼럼을 쓰는 곳도 뉴욕이다. 여태까지의 공연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고 뜻 깊었지만 특히 이번 카네기홀 독창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컸다. 개인적으로 카네기홀에서 통산 세 번째이자 카네기홀에 존재하는 3개의 모든 홀(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 잔켈홀, 웨일 리사이틀홀)에서 공연한 최초의 한국인 음악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공연수익 전액을 장학금으로

이 두 가지 사실보다 더욱 큰 의미는 유엔본부에 기부한 공연의 수익금 전액이 60년 전 한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해준 전 세계 17개국 참전용사의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에 쓰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및 해외에서 여러 자선공연을 했지만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는 처음이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그런 일을 하냐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왜 힘들게 개인이 나서서 하냐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내가 6·25전쟁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정부와 아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또 6·25전쟁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기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기쁜 마음으로 기부를 할 수 있었다.

작은 힘으로나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즉 타고난 재능을 활용하여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을 기부하는 일은 두 배의 기쁨이었다. 재능과 재산, 이 두 가지를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특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권이란 단어를 이렇게 좋은 의미로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하는 점이기도 하지만 기부와 나눔 행위는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신이 누구에게나 준 선물인 것 같다.

나는 재벌도 아니고 수십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총수나 임원도 아니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기부활동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컨대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또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기부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그랬다면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액수와 여러 단체를 직접 알아보며 이곳에는 이걸 보내야지, 저곳에는 저걸 보내야지 하면서 세부적인 점까지 챙기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동전 몇개로도 특권이 가능

어떠한 목적이나 저의가 있는 기부는 절대 장기적으로 할 수 없다. 나눔을 실천해본 사람만이 아는 특별한 행복도 절대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부를 해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에게 베푼 쪽은 자신인데 오히려 받은 듯이 느껴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을. 아마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재능도 없고 재산도 없는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에게 참 감사한다. 어릴 때부터 기부와 나눔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일곱 살 무렵 엄마가 ‘사랑의 빵’이라는 자선단체의 저금통을 선물하시며 “형주야, 앞으로 용돈을 받을 때 네가 원한다면 그중 일부를 넣어두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당시만 해도 부모님의 의도는 물론 말씀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엔 동전 하나를 넣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은데 ‘사랑의 빵’ 저금통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본 엄마가 어느 날 내게 TV로 방송된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며 “형주야, 네가 넣는 작은 동전 하나하나가 저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된단다”라고 하셨다. 나에겐 작은 동전이지만 그 동전이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말씀이 ‘사랑의 빵’ 저금통에 동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요즘도 틈만 나면 이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다.

이렇듯 기부와 나눔은 생활 속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기부 금액=큰 액수의 돈’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주길 바란다. 부담을 버리면 누구나 쉽게 나누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누면 나눌수록 기쁨은 배가 되고, 베풀면 베풀수록 복을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얼마 전에 이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카네기홀 독창회를 끝낸 며칠 뒤 유엔본부에서 수여하는 평화메달을 수상한 것이다. 인간은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갈 때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