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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던 희생정신 北이 일깨웠다

namsarang 2010. 12. 15. 22:06
[시론/복거일]

 

                           잠자던 희생정신 이 일깨웠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뒤 해병대에 응모하는 젊은이가 오히려 크게 늘었다. 특히 어렵고 위험한 수색 병과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이 흐뭇한 현상은 천안함 폭침사건 뒤의 반응과 대조적이다. 당시엔 전방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이 부모에게 전화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한 대응을 막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전쟁이 난다”는 선전 덕분에 지난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크게 이겼다.

이렇게 달라진 반응은 우리 젊은이들의 본성 속에 잠재한 희생정신이 깨어난 덕분이다. 천안함 피습 당시엔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구체적 증거가 없었고 정부의 발표가 오락가락한 데다 북한을 감싸고도는 세력이 억설을 계속 늘어놓아 위기에서 발휘되는 희생정신이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깨어날 겨를이 없었다. 이번엔 모두 북한의 무도한 공격으로 우리 사회가 불타는 모습을 보았다.

희생정신은 어떻게 생겼는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스스로 희생하는 태도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본성에 내재한다는 점이다. 시대와 인종을 뛰어넘어 모든 사회에서 희생정신은 나온다.

이 역설은 사람이 아니라 그가 지닌 유전자를 고려해야 설명된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유전자였다. 유기체는 유전자의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뒤에 만들어졌다. 유기체는 본질적으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실어 나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신의 희생으로 유전자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전형적이다. 사람은 형제와 유전자의 반을 공유하므로 여러 형제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을 선뜻 희생한다.

이런 태도는 차츰 친족이 아닌 집단에 대해서도 지니게 되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자신의 혈육이 속한 집단이 생존할 수 있다면 사람은 대체로 그렇게 한다. 나라가 위급할 때 발휘되는 애국심이 대표적이다. 적군의 포탄이 떨어지자 휴가길에서 발길을 돌렸다가 전사한 해병의 선택도 그것이다. 사회를 이룬 종()에선 진정한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의 모습을 한다.

위에서 기술한 생물학적 설명은 우리 젊은이의 희생정신을 조금이라도 평범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 고귀한 행동이 우리 본성의 한 부분이며 결코 변덕이나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감동과 안심을 함께 준다. 그러나 우리는 본성에 희생정신이 내재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 현대 문명에선 문화의 영향이 워낙 커서 본성을 흔히 압도한다. 우리는 더 많은 젊은이의 마음속에서 애국심이 깨어나서 튼튼히 자라도록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생존에 필수적인 이 과업은 수행하기 힘들다. 어릴 적부터 좌파 교사에게서 왜곡된 교과서를 배운지라,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이념과 우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옥 같은 북한의 실상도, 북한이 제기하는 엄청난 위협도 모른다.

군대는 섬이 아니다. 사회로부터 인력과 물자를 공급받고 사회의 풍조에 영향을 받는다. 해병대는 6·25전쟁에서 미 해병대의 예하 부대로 작전에 참여하면서 자라났다. 마침내 1951년 6월 도솔산전투에서 미 해병대가 실질적으로 포기한 임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해 국군의 사기와 명성을 높였다.

감격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이란 호칭을 받은 해병대의 전통이 오래 이어지려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종북주의의 검은 구름을 걷어내는 데 뜻있는 모두가 나서야 한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