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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추기경의 짧은 전언이 가슴에 남는 이유

namsarang 2010. 12. 17. 21:24
[기자의 눈/김갑식]

 

                  정 추기경의 짧은 전언이 가슴에 남는 이유

 

 

 1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긴급 사제회의가 취소됐다.

회의에서는 정진석 추기경의 “3월 주교단 성명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이지 반대는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시작된 논란에 대해 교구 신부들의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구사)은 10일 성명에서 정 추기경을 “골수 반공주의자”로 비난했고, 13일 일부 신부는 추기경 용퇴를 주장했다.

사제회의 취소를 알리는 서울대교구의 보도자료는 석 줄이었다. 정 추기경의 말은 간단했다. “사제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자.”

13일 기자는 정구사 출신 신부 10여 명이 참여한 기자회견 현장에 있었다. 이들은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라는 성명에서 추기경 용퇴를 주장한 뒤 질문을 받았다. 자신을 교계 방송 소속으로 밝힌 한 기자의 말은 사회를 맡은 함세웅 신부의 목소리에 묻혔다. “뭘 물어봐. 나가지도 않을 텐데. 어용관보방송이….”

이 기자가 공식석상에서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함 신부는 특정 프로그램이 외압으로 나가지 않았다며 “그쪽 방송 ○○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고, 뒤편의 또 다른 신부는 야유성 고함을 질렀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하겠지만 여러 사람이 지켜본 그대로다.

정구사는 4대강 개발과 관련해 집회와 성명 등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정구사와 이 단체에서 활동한 신부 25명은 사흘 간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두 성명의 주체는 사실상 ‘한 몸’으로 정구사의 전형적인 세몰이다.

 

하지만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의 평신도 ‘민심’은 비판적이다. 한 신자가 남긴 글이다. “에이, 뭐 부처님 보러 가지 스님 보러 가나. 몇 해 전 사찰들의 싸움을 보며 절에 다니는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도 예수님 보러 가지 신부님 보러 가나 해야 합니까?”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게시판 민심의 공통점은 “왜 성당에 와서 4대강 반대 주장을 들어야 하나” “정구사는 가톨릭 대표가 아니다” “골수 반공주의자에 용퇴라니,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1970, 80년대 칼바람이 불던 민주화운동 시절 행간의 의미를 살려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똑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상반된 주장이 넘쳐난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답은 몰라도 그 출발점은 나만 옳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추기경의 짧은 말은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김갑식 문화부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