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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만 남은 軍

namsarang 2010. 12. 18. 20:34
[오늘과 내일/육정수]

 

                                     행동만 남은

 

방부 장관 교체에 이어 육군참모총장 후임 및 육해공군 장성급 인사가 그제 마무리됐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이후 군()을 ‘야전성() 있는 군대다운 군대’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 일단락된 셈이다. 오늘부터 21일 사이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중단됐던 해병대의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재개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바로 남쪽, 연평도 서남방의 우리 해상이 표적이다. 새 출발을 하는 군의 첫 시험이라 할 수 있다.

도발에 충분한 응징 한번도 없어

이번 포격훈련에는 주한미군도 참여해 훈련을 적극 지원한다. 최근 한미 합참의장 회의에서 합의된 ‘한국군 주도, 미군 지원’ 형태가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를 핑계로 또 도발을 한다면 한미 연합군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미군의 ‘자동 개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치다. 북한이 어떤 대응을 보일지, 도발의 경우 우리 군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라 하겠다.

우리 군은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군사적 도발을 시작한 북한을 제대로 응징해본 적이 없다. 1968년의 1·21 청와대습격 미수와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 공해상 납치, 삼척·울진지구 공비() 침투, 1969년의 미군 정찰기(EC-121) 공해상 격추, 1976년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1983년 아웅산 테러, 1987년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연평해전, 지난해 대청해전…. 우리에 대한 도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군 피해에도 기껏해야 무력시위만을 벌였다.

천안함 폭침 이후 휴전선 일대에 대형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지만 심리전 방송은 끝내 재개하지 못했다. 무력시위를 위한 서해 한미연합훈련은 중국의 반대로 포기하고 동해 훈련으로 대체하는 데 그쳤다. 연평도 도발 후에는 서해에서 미7함대 항모 전단()과 함께 연합훈련을 실시했지만 NLL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국민이 거듭된 북의 도발에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자위권 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와 군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소리도 높아졌다. 군은 6대뿐이던 연평도의 K-9 자주포를 2배로 늘리고 대()포병레이더와 다연장로켓을 추가 배치했다. 사단 규모의 서해 5도 사령부 설치 문제도 검토키로 했다. 소극적 대응 위주인 교전규칙도 바꾸기로 했다. 18개월까지 줄이려던 사병의 의무복무기간을 21개월(육군 해병대 기준)로 동결했다. 국회는 내년 국방예산도 대폭 늘렸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의 화려한 말잔치가 이어졌다. “연평도 포격 당시 전투기로 때렸어야 했다” “다시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 “행정군대를 전투군대로 바꾸겠다” “야전성 있는 군인을 우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원시원한 김 장관의 어투와 매서운 눈초리에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말잔치 시간은 끝났다. 덜미 잡힐 말은 이제 삼가는 게 좋을 성싶다.

입으로 할 말은 그동안 다했다

북의 연평도 도발 당시 청와대 지하벙커와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오간 얘기가 공개된 것은 유감이다. 청와대 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투기로는 어떻게 못하느냐”고 여러 차례 묻자 합참 측은 “우리 민간인의 대량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며 확전을 기피했다고 흘렸다. “북한이 1, 2차 포격에 이어 3차 포격을 감행했다면 전투기로 때리기로 결정했었다”는 얘기도 내놓았다. 청와대 측이 군에 책임을 전가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이런 행태는 유사시 대통령과 합참의장 간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이 다시 도발할 경우 군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대통령 책임이다.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 나아가 김정일 정권까지도 우리 군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