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
‘부름의 전화’ 아름다운 사람들
해마다 12월이 오면 나는 소중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e메일이 대세인 요즘도 볼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서한이다. ‘한국 부름의 전화 자원 활동대’ 김정희 대장(72)은 올해도 회사로 소식을 전해왔다. 김 대장은 “20년 전 동아일보가 세상에 ‘부름의 전화’를 알려주었고, 그에 힘입어 힘들지만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썼다. 젊은 현장기자 때였던 1991년 1월 취재한 인연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접하는 과분한 송년 인사가 늘 고마우면서도 부끄럽다.
충남 아산 온양의 부잣집 딸이었던 김 대장은 학창 시절 친구의 부모가 운영하던 보육원에서 만난 6·25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하면서 봉사의 삶을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오랫동안 보육원에서 일했다. 어느 날 시각장애인이 혼자 길을 걷다 개천에 빠진 모습을 보고 장애인들의 삶 속으로 다가갔다. 1987년 10월 몇몇 자원봉사자와 함께 중증(重症)장애인을 돕기 위한 ‘부름의 전화’를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부름의 전화 사람들은 23년 동안 1급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과 손발이 돼 주었다. 자원봉사자 400여 명의 올해 ‘파송(派送) 건수’는 1300여 회에 이른다.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김 대장과 조성숙 간사(55)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연간 15∼20회의 답사활동도 벌였다. 봉사자들은 자기 돈과 시간을 쓰고 차량까지 제공한다.
이 단체는 기업 등 외부에 후원 요청을 하지 않는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회보(會報)에도 후원금 계좌번호를 적지 않는다. 입소문으로 알게 돼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문의하면 그때서야 알려준다. 모든 돈의 지출과 수입 내용은 회보에 10원 단위까지 공개한다. 김 대장은 “외부에 자랑할 일도 아니고, 장애인을 내세워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다”면서 “분에 넘치는 욕심을 버리고 능력껏 할 수 있는 일만 할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봉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 이념, 종교에 관한 대화는 금물이다. 어떤 명분으로든 단체 차원에서 시위나 집회에 참가한 적도 없다. 개인적 견해는 다르더라도 사회봉사단체는 그 취지에 맞게 순수한 봉사활동에 그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았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나 단체들이 돈과 정치에 오염된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낮은 목소리와 조용한 발걸음으로 장애인, 부모 없는 어린이, 무의탁 노인 같은 약자들을 보살피는 선한 이들이 적지 않다. 성직자의 옷을 벗고 정치판이나 카지노판에 뛰어드는 게 더 어울릴 듯한 속류(俗流) 종교인도 있지만, 영혼의 평화와 감동을 전하며 묵묵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와 신자가 더 많다. 소외계층에 매일 도시락 450개를 전달해온 전북 정읍종합사회복지관 박영미 조리사, 아프가니스탄 봉사 도중 A형 간염에 걸려 숨져가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신민정 씨 같은 의인(義人)도 있다.
기쁨과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과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부름의 전화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세속의 때에 찌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흘밖에 남지 않은 2010년을 뒤로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공동체의 건강성을 지켜주고 살맛나게 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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