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창진]
복지국가, 논쟁보다 합의가 중요하다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한국형 복지모델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민주당은 복지모델을 뒷받침하는 재원 언급이 없다며 ‘빈수레형 복지’라고 비판했다. 2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도 복지예산증가분이 역대 최고이고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 데 대해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정권은 부자만 생각하는 정권이라고 반박했다.
필자는 이러한 논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인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판단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지국가라고 우겨도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물론 반대도 성립할 수 있다. 복지국가 여부에 대한 현실인식이 중요하긴 하지만 국민적 정서를 도외시한 현실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 비율이나 정부예산 대비 복지예산 비율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지표만을 가지고 복지수준을 판단하다가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복지는 공공재정과 항상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과 미래전망은 매우 위협적이다. 사회양극화로 인해 빈곤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부양기능이 약화되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공동체의식이 희박해진다.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복지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의 주역인 미래일꾼과 납세인구가 줄어든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점은 이념적 복지국가논쟁이 아니라 이러한 위협적 상황에 맞는 복지모델과 재원 확보 방법을 모색하고 사회적 합의를 하루빨리 이루는 일이다.
사회적 합의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재원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이 특히 그러하다. 더 많은 혜택을 받으려면 더 많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부담과 급여 비례의 룰을 정해야 한다.
둘째, 빈곤계층에 대해서는 예방 치료 재활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치료에 해당하는 빈곤층의 생계 및 의료지원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예방에 해당하는 빈곤추락방지프로그램과 재활에 해당하는 빈곤탈출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다 중요하지만, 질병예방이 건강관리의 으뜸이다. 병에 걸린 뒤의 치료는 다음 문제다. 빈곤 문제 역시 예방이 정책의 으뜸이 되어야 한다.
셋째, 복지서비스는 수요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획일적인 서비스를 맞춤형, 개별형 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고 복지체감도가 높아진다.
넷째, 복지전달체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의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현장서비스인력을 대폭 보강해야 할 것이다. 또 부처 간 업무조정시스템을 구축해야 복지예산의 중복과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지역별 복지인프라 격차를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다섯째, 복지영역을 확대하고 다양화해야 한다. 복지를 선진화하고 대상자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생계 및 의료지원 중심의 복지에서 벗어나 교육 문화 주택 교통 환경 등 다양한 복지개념을 추가해야 한다.
복지국가논쟁의 주인공은 국민이다. 정치적 공방의 장으로 변질되어가는 복지국가논쟁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어떠할까? 바람직한 복지국가모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합의를 모색하는 일이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창진 CHA의과학대학 보건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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