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을 북한 민주화 元年으로
1950년 홍안의 18세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 루돌프 러멜은 1951년 1·4후퇴 때 불타는 서울 거리를 헤매던 고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인류를 전쟁 참화에서 구하는 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정치인도, 현장 평화운동가도 아닌 학자로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1996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에 오른 평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민주국가 간에는 전쟁이 없다”
러멜은 인터넷 홈페이지(www.hawaii.edu/powerkills) 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형제여 말해주게. 독재자들은 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는가? 영화를 위해, 물질을 위해, 신념을 위해, 증오를 위해, 권력을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다.”
2002년 ‘러멜의 자유주의 평화이론’이라는 책을 썼던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은 러멜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두 문장으로 요약했다. “자유의 확산만이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인민대학살을 막는 길이다. 민주주의 국가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전제(專制)정권의 민주화만이 전쟁예방의 바른 길이다.”
1950년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원을 받아 6·25전쟁을 일으켜 남북 합쳐 50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삼천리강토를 폐허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집단농장을 추진하면서 계획적으로 기아(飢餓)정책을 동원해 1932∼33년 2년 사이에 우크라이나 농민 800만 명을 굶어죽게 했다. 중국계 작가 장룽(張戎)은 2005년에 낸 ‘마오쩌둥-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제1부 제1장 첫 문장에서 마오를 “평화 시에 7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김정일은 1990년대 경제실패와 식량난, 배급중단으로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였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자신들의 공산독재 통치, 아니 개인독재 통치를 지속하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에 가둬 죽인 동포만도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러멜은 2004년에 낸 ‘전쟁과 데모사이드, 이제 그만’이란 책에서 ‘데모사이드’ 즉 시민학살을 이렇게 정의했다. “정부가 강제노동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기아상태에 빠뜨려 아사(餓死)를 유발하거나, 전시(戰時)라고 무차별로 폭탄을 퍼부어 비무장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데모사이드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런 김일성 왕조 집단의 반(反)인륜 패륜 정치, 그리고 ‘자유와 진리와 생명 없는 북한’을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정의(正義)구현을 표방하는 일부 사제가 “(정 추기경이)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라고 공격했다. 나는 이들의 주장을 ‘정의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北민주화와 핵개발의 시간싸움
김정일의 목표는 개인독재를 유지하고 권력을 아들 김정은에게 세습해 죽어서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보호받는 데 있다. 주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김씨 세습왕조 수호를 위해 선택한 것이 선군(先軍)정치라는 이름의 병영(兵營)국가체제 공고화이고, 핵 개발이다. 김정일과 그에 충성하며 이익을 나눠 먹는 군부, 당, 보안기구의 특권층은 ‘개혁과 개방’을 죽음의 지름길이라 생각하며, 핵 보유를 통한 ‘세계의 깡패 짓’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본다.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남한은 오로지 경제적으로 자기들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이 저들의 기본전략이다.
이런 김정일 집단을 방임하고, 돕기까지 하는 것은 민족과 인류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다. 김일성 왕조의 개인지배 세습독재체제가 영속한다면 남한은 끊임없는 전쟁 위협에 시달릴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수년 안에 핵 공포가 현실화하리라는 점이다.
북한의 정권 변경 말고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김정일 자연사(自然死) 이후의 상황 대응도 중요하지만, 북한 내부의 민주화와 자유 확산이 더 급하다. 물론 강압적 감시체제 아래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전방위적으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해 내는 것이 북한 문제 해결, 특히 핵 해결을 위한 멀지만 가까운 길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지도자와 국민이라면 북을 어떻게 다룰지 근본적 발상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김정일-김정은 이후의 북’을 위한 담대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그 위험과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도 이대로 ‘핵을 완성한 북’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 민주화를 위한 ‘진정한 햇볕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2011년을 북한 민주화 원년(元年)으로 만들자고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제안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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