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 인기 TV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을 맺어주는 책으로 언급돼 때아닌 인기를 누리는 소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도지슨이란 영국 수학자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 발표했고,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동화다.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을 꾸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모험을 한다. 이 나라에는 반대되는 일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비현실적인 패러독스와 부조리가 난무한다. 정신의학과에서는 형상이 왜곡돼 보이는 증상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되돌아보면 2010년 대한민국도 앨리스가 방문한 이상한 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대표 케이스는 뭐니 뭐니 해도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그로테스크한 상황 전개였다. 온갖 궤변과 음모론이 난무하며 국민을 현혹시켰다. 광우병 파동과 비슷했다. 한 출판사는 상호 배치되고 비상식적인 주장들로 가득 찬 ‘천안함 시리즈’를 연속으로 출간했다. 이런 책이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의 ‘추천도서’이니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피로 파괴니 좌초니 별 주장이 다 있었지만, 결국 침몰원인은 폭파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뢰공격 아니면 기뢰가 원인인데,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인 어뢰 잔해가 나오면서 결론은 명확해졌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러시아 학자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폭침이 있고 난 직후, 그리고 어뢰가 발견되기 전에 예언적인 주장을 했다. 한국의 좌파들은 설사 ‘북한 어뢰의 파편이 나와도’ 안 믿을 것이라고.
비상식 가득 찬 ‘천안함 시리즈’
정말 그랬다. 이제는 지엽적인 문제로 물고 늘어지며, 한국 정부가 조작했다는 설이 득세했다. 원인 조작을 위해 어뢰 잔해를 ‘심어 놨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그렇게 ‘유능’하고 주도면밀하다고 믿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담론(談論)’의 가치를 경시하는, 즉 ‘실용’으로 가치와 이념의 부재를 메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때때로 무기력하고 허술한 정부이지, 그런 ‘악마적 천재성’을 가진 체제가 아니다.
2009년 6월의 혼란 분위기에 편승한 시국선언 교수들도 정도는 훨씬 약하지만 마찬가지다. 의견 표시야 자유지만 1980년대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민주주의의 역행’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촌스러운 착각과 자족감을 줬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과잉과 대의민주주의 부정이 문제지, 민주주의의 부재가 문제의 핵심인 세상은 아니다.
세계적 명성의 좌파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천안함은 곧 잊혀지고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란 희망 섞인 예측을 했다. 그럴까? 천안함 사건은 결국 결판날 진실게임, 즉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이 될 것이다. 조작이라 주장하는 물리학자와 지질학자는 곧 다가올 폭침 1주기를 맞아 열전도나 알루미늄 화학반응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에 참여하길 권한다. 절대로 회피하지 말기 바란다. 거기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보다 ‘김정일 정권 보존의 법칙’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기 바란다.
진실이 더 명백해졌을 때 그들은 또 북한 핵의 경우처럼 넘어갈 것인가? 북한은 ‘핵을 만들 의도도 능력도 없다’고 강변하다가, 핵실험을 하고는 ‘미국에 대응하는 자위용’이라 둘러대다가, 이제는 남한에 대고 노골적인 핵 위협을 한다. 그래도 국내의 친북좌파는 말이 없다. ‘반핵반전’을 외치다가 이제 와 ‘반핵’은 쏙 빼놓는 시민단체들. 핵실험 하고 핵무기 만드는데도 침묵하는 환경단체들.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와 상극인 기독교 인사, 단체, 언론들이 북한 감싸기에 급급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선 완전히 침묵하는 것. 모두 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북한에 침묵하는 ‘반전반핵’ 세력
처음엔 조작이라고 하다가, 이제 와서 북한 공격에 대한 안보를 허술히 했다고 주장하고. 그러면 “폭침을 인정하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또 그건 아니라고 하는 민주당도 이상한 나라의 제1야당 자격을 가지고 있다. 수권을 꿈꾸는 공당(公黨)이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 그렇게 줏대 없이 입장을 정리 못 하고 시류에 떠밀려 다니는 것이 한심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이상함’은 ‘부카니스탄’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북쪽 체제에 비하면 귀엽고 재미있는 수준이다. 북쪽 이야기는 엽기적인 막장 호러 영화이다. 북쪽이 괴기스럽다면 남쪽은 기묘할 뿐이다. 원래 ‘앨리스’는 귀여운 캐릭터다. 그러나 이런 그로테스크한 재미도 오래가고 반복되면 식상해진다. 잠에서 깨어나 앨리스가 돌아가는 ‘정상적인’ 세계처럼 올해는 이전보다 덜 이상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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