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동용승]
‘北의 빗장’ 소프트파워가 연다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주민 사이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고 해야 맞다. 주민 사이에 한국의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일본과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한류바람이 북한에도 부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케이팝(K-pop)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의 가요가 북한에서도 공공연히 유행한다. 북한 당국은 공개적으로 남한 프로그램을 보는 행위를 단속하고 나섰다. 한류가 유행함을 입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에서는 은밀하게 입소문을 타고 번지는 유행의 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북한당국은 이와 같은 북한 주민의 변화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아니 맞추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억제하려고 한다. 2009년 11월 30일의 화폐 교환 조치는 대표적으로 변화의 바람을 억제하려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더는 가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주민은 스스로 생계를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기능은 나날이 확대되는 반면 공경제 부문의 기능은 점점 더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화폐교환을 통해 일시에 사경제 부문을 억제하고 공경제 부문을 정상화하려는 북한당국의 의도는 불과 1, 2개월 만에 꺾이고 말았다.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한 것이다. 북한 주민은 이미 시장을 통해 생활을 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이 갑작스럽게 화폐교환과 시장억제라는 후속조치를 취하니까 북한 주민은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의 불만은 확산됐고, 북한당국은 시장을 다시 허용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부랴부랴 수습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변화하는 속도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북한의 시장가격은 환율에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시장 상인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환율에 민감할 수 있다. 시장가격이 중국과의 환율에 영향을 받고 이는 외환암시장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환율이 오르면 시장의 쌀 가격도 동시에 오른다. 중국 위안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북한시장도 여지없이 요동을 친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파워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북한에는 정보 전달루트가 생겼고 사적인 유통망이 형성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무력과 강압을 통한 하드파워를 가지고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소프트파워를 통해 이뤄내는 셈이다. 소프트파워의 중심에는 북한 주민의 삶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당국이 보장하지 못하는 생존권을 주민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것이 소프트파워의 형태로 북한 주민의 삶에 다양한 변화를 견인한다.
북한 주민은 이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체질화됐다. 그리고 무엇인가 모를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를 몰래 즐겨보며 애환을 달래는 일도 은연중에 외부 세계를 동경하는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주민의 힘이 확산될수록 북한당국도 더는 변화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깊이 생각해 본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분단의 현실을 깨닫게 됐다. 안보의 중요성도 새삼 되새기게 됐다. 우리는 북한이 무력도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한 하드파워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하드파워를 바탕으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는 소프트파워를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적절한 조합이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고 한반도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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