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호열]
국회 대북정책 전문가 3명만 있어도
한나라당이 감사원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걸 보고 많은 사람이 역시 국회가 세긴 세구나 했을 것이다. 여당은 그렇다 치고 소수 야당인 민주당 원내대표는 과거 4명의 고위직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낙마시켰는데 이번까지 5관왕을 했다고 득의만만해했다니 청와대 인선이 잘못된 것인지, 국회가 막강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정치, 특히 인사문제에 그토록 위세를 과시하는 국회가 정작 중요한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 물론 세종시나 4대강 문제처럼 국가 중대사라는 명분과 지역구 이해관계라는 실리가 중첩된 경우 예외에 해당한다. 대부분 국정감사에서 일회성 폭로나 이벤트식 보여주기 행사가 판을 치고 다른 사안에 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요즘 국회의 모습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남북관계나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 이후 당장에라도 핵전쟁의 참화가 일 듯이 협박하던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대화를 재촉하고 있다.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라 일축하기에는 사정이 복잡하다. 그 이유는 주변정세 변화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견해차를 조율하며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고 그 핵심에 북핵 문제와 한반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납치 일본인 문제 등 3대 선결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꿈적도 않을 것 같던 일본이 6자회담 이전이라도 북일회담에 나설 공산이다.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북한문제
북한은 때를 만난 듯 대화를 미끼로 전방위적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는데 우리 국회는 벌써부터 관심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 가 있고 남북문제는 뒷전으로 한참 밀려 있다.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게 엊그제 같고, 북한이 정부 정당 단체의 연합성명의 형태로 연일 통일전선 차원의 대화 공세를 퍼붓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북한의 회담 제의에 대해 일단 대화 문은 열어놓고자 끊겼던 판문점 남북 핫라인을 복원하고 적십자 및 경협 관련 회담에도 응하기로 했다. 이처럼 또다시 중대 변환기에 접어든 현 단계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 정세를 면밀히 따져보고 제3, 제4의 정책대안을 내놓아도 부족한데 국론 결집은커녕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으니 이제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겠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무엇보다 국회에 남북문제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신뢰할 만한 의원이 없다. 한 명도 없다면 지나치다 할 만큼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모두는 기라성 같고 그 경력이나 직책이 막강하고 화려하다. 인사 청문회나 방송토론에서 보면 송곳 같은 질문과 언변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본연의 업무인 입법 활동과 관련해 이렇다 할 업적이 있는 의원을 찾기 어렵다. 지난해 6·25전시납북자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세비를 반납하라고 했을 판이다.
특히 남북문제나 대북정책에는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도 중요한데 모든 걸 당론으로 결정하니 자연히 흑백논리로 정쟁화의 소재가 될 뿐 소통과 수렴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무성영화 시대 변사 같은 당 대변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정체성과 생존문제와 직결된 대북정책을 예능프로로 만들어버렸다.
해법은 있다. 첫째, 당장이라도 국회에서 대북정책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 검증 안 된 주장이 난무하지 못하도록 대북정책 관련 시시비비를 가려 올바른 남북관계의 기틀을 잡아야 한다. 햇볕정책의 공과를 철저히 가려내지 못했기에 북한에서도 틈만 나면 우리 정부를 흔들어대며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둘째, 대포동 미사일 발사 후 미국에서 페리 프로세스가 나온 것처럼 우리 국회에서도 책임 있는 보고서가 나오고 이를 인적,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북한인권법 같은 기본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국회이기에 천안함 폭침 때나 연평도 피폭 시에도 결의안 채택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각성해야 한다.
국회 대북정책 청문회 열어야
마지막으로 현행 제도 아래서는 남북문제나 대북정책 분야에서 경륜 있고 관록 있는 의원이 나올 수가 없다. 지역구 관리가 핵심인 소선거구제에서 외교통일 분야 전문가가 살아남기 어렵다. 보완책인 비례대표제도 4년 단임의 관행 때문에 문제가 많다. 전국구 또는 광역구 정당에서 전문가를 내세워 당선시키든지, 지역구 의원 수는 줄이고 비례대표의원은 수를 늘리되 2년 임기로, 그러나 일 잘하면 계속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도 생각해볼 일이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 사람의 입을 주목할 의원이 3명만 있어도 더 바랄 게 없겠다.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yoohy@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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