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
전관예우 요지경
변호사들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로펌 내에서도 소득 격차가 크다. T로펌의 K 변호사는 한 건에 수십억 원 내지 100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판검사 재직 경험이 없는 40대 후반이지만 법원 검찰의 고위직을 지낸 쟁쟁한 변호사들도 그를 부러워한다. 그는 변호사 개업 후 미국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주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해 실력을 쌓았다. 그의 무기는 국제 기업분쟁 및 인수합병(M&A)에 관한 전문지식과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실력이다.
변호사 시장 ‘전문성 중시’가 트렌드
그런가 하면 한 달에 500만 원짜리 2, 3건도 못 하는 변호사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건 중에는 1000만∼2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떼먹거나 빚을 못 갚은 처참한 변호사도 더러 있다.
대다수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 중심의 ‘법정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도 층층의 등급이 있다. 개업 변호사 1만 명 시대에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로펌 변호사가 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손꼽히는 몇몇 대형 로펌에는 이제 서울지역 법원장 출신도 들어가기 어렵다. 흔히 최종 근무지역과 전문성, 사법시험 및 연수원 기수, 외국어 능력 등을 고려해 영입하지만 경력만 갖고는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변호사 시장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사건을 쫓아다니며 고소나 소송을 부추기는 ‘앰뷸런스 변호사’도 늘고 있어 변호사 시장이 점점 더 혼탁해지고 있다. 앞으로 법률 시장이 미국 영국 등 서양 변호사들에게 개방되면 변호사 업계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바뀔 것이다.
법원 검찰에서는 변호사 출신을 판검사로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一元化)에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많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스포일(spoil)되기 쉽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다. 돈에 한번 때 묻은 변호사는 공정한 판검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수사학(修辭學)이 발달한 그리스 로마시대는 변호사 전성시대였지만 무료 변론이 원칙이었다. 봉사하는 명예직의 개념이 강했다. 요즘도 고위직 출신 가운데 체면을 중시하는 변호사들은 “의뢰인과의 수임료 협상이 고역”이라고 털어놓는다.
로펌의 고위직 출신 선호는 전관예우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대검 차장을 지낸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중도 낙마시킨 주요인은 전관예우 의혹이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되기 전 7개월 동안 7억 원을 받은 것이 전관예우가 아니라면 설득력이 약하다. 고위직 출신이라도 정상적으로는 월 소득 5000만 원을 넘기기 쉽지 않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사건 해결능력과 후배들의 신망이 그 정도 가치를 갖는 게 아니겠느냐. 수요가 있는 한 전관예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진적이고 불공정한 악습 끊어야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법관을 지낸 뒤 5년 동안 60억 원을 벌었다. 그는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 의혹에 대해 “승소율이 17%였다. 전관예우는커녕 전관박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출신이 5년간 470여 건을 맡은 것이 전관예우가 아니라면 소도 웃는다. 상고 이유서에 대법관 출신이 변호인으로 들어 있지 않으면 판결도 받아보지 못한 채 아예 문턱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이름만 빌려 달라”는 요청에 응하는 자체가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기에 중견 봉급쟁이의 10년 이상 연봉을 몇 달 만에 받는지 일반인들은 궁금하다. 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한 로펌 변호사도 “월 1억 원의 급여 수준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만약 판사와의 사이에 돈이 오가고 그로 인해 억울한 상대방까지 생긴다면 그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에 속한다. 전관예우는 반드시 단절해야 하는 법조계의 후진적 악습이요, 공정사회를 좀먹는 대표적 불공정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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