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연욱]
增稅의 저주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말기인 1979년 부마(釜馬)항쟁 때 시위 군중 사이에 “부가가치세 철폐하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2년 전 박 정권이 안정적 세원 확보를 명분으로 도입한 부가세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부가세 신설에 등을 돌린 민심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공화당에 참패를 안겼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가세를 인상했다가 총선에서 졌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세금 폭탄’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과세표준이 올라 종부세 대상자들에게 날아든 세금 고지서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민주당 의원은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닌 사람들마저 종부세에 부정적이었다. 그것 때문에 정권을 뺏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건강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후보의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이 발언을 듣고 ‘엄청난 악재가 몰려오겠구나’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이 후보는 아들의 병역 의혹 등이 겹치면서 패배했다. 정치권이 증세(增稅)에 몸조심을 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 실증하는 ‘증세의 저주’ 때문이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로 재미를 본 야권이 다시 ‘무상 시리즈’ 복지 공약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재원 조달 문제가 쟁점으로 대두되자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재정 전반을 검토하겠다”면서도 “증세 수요를 최소한 줄여나가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정책통 의원들은 당의 ‘무상 시리즈’에 대해 “구체적인 재원대책이 안 보인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은 정치가들이 복지를 선물해 주겠다면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그로 인해 자신이 세금을 더 내는 것에는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복지 깃발을 들려는 정치인이라면 이제부터 증세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 “재원 확보를 말하지 않고 복지 확대만 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발언이 차라리 솔직해 보인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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