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
과학자의 조국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존 폰 노이만(1903∼1957)은 독일과 스위스에서 활동하다 히틀러의 집권이 다가오자 미국으로 망명한다. 양자역학의 최고봉이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참가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에 원폭을 투하하고 싶었겠지만 독일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원폭은 그때까지 ‘1억 총옥쇄(總玉碎)’를 외치며 버티던 일본에 투하됐다.
▷중국과학원 원사(院士·과학기술분야 최고 영예 칭호)인 스창쉬(師昌緖·91) 박사는 중국 스텔스 전투기 젠(殲)-20의 개발에 청춘을 바쳤다. 스 박사는 제트기 엔진에 쓰이는 특수합금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시안(西安)의 시베이 공학원을 졸업한 뒤 1948년 미국으로 떠난 초기 유학파다. 6·25전쟁 기간에 미국이 중국으로의 출국을 금지했던 35명의 중국 과학자 중 한 명에 그도 포함돼 있었다. 1955년 출국금지가 풀리자 스 박사는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중국행을 택했다. 스 박사의 지도교수가 “왜 험난한 길을 가려는가”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조국이 일할 사람이 없어 어려운데 외면할 수는 없다”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문화혁명의 암흑기 속에서도 제트기 엔진 개발에 매진한 그가 17일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최고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중국 정부는 “과학자에게는 사상도, 당성(黨性)도 묻지 않는다”며 외국에서 공부한 과학기술 인력을 끌어들였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독특한 민족이지만 중국인도 이에 못지않은 것 같다. 미국의 한국인 이공계 박사 가운데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73.9%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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