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97) 성 프란치스코 드 살(St. Francis de sales)

namsarang 2011. 1. 23. 19:47

[금주의 성인]

 

(97)  성 프란치스코 드 살(St. Francis de sales)


   유럽에 시낭쇄신 운동 일으켜, 감동적이며 쉬운 강론으로 인기.

   1567~1622. 사보이공국 출생. 프랑스 리옹 사망. 주교. 교회학자. 언론인 및 작가들의 수호성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성인입니다.

 

 성인은 귀족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습니다. 성인의 부모님은 성인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시켰습니다.


 12살 때 프랑스 클레르몽대에 입학한 그는 신학수업을 들으며 신앙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됩니다. 처음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했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성경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제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성인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법과 신학을 전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성인의 부모님은 금의환향하는 아들을 위해 지역의원 자리를 마련해놓고 약혼자까지 정해둔 상태였습니다. 성인은 부모님 뜻을 거슬러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했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며 1593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럽사회는 종교개혁(1517년) 영향으로 가톨릭교회에 등을 돌린 신자들이 늘어나던 때였습니다. 그는 신앙쇄신 운동을 벌이며 신자들이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힘썼습니다.
 성인은 1602년 스위스 제네바교구장에 임명됐고, 이후에도 변함없이 신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하느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감동적 신앙체험 이야기를 곁들이며 어려운 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강론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때문에 그가 강론하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한 성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성인은 성녀가 수도회를 설립하도록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성인은 1622년 프랑스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뒀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신심생활 입문」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은 1665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에 의해 시성됐고, 187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됐습니다. 이어 교황 비오 11세는 1923년 성인을 언론인과 작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1월 27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St. Angela Merici, 사진). 
   


   1474~1540. 이탈리아 출생 및 사망. 수녀. 우르술라회 설립. 성녀는 13살 때 첫 영성체를 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것을 결심했다. 성녀는 작은형제회 재속회원으로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았고, 특히 여자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헌신했다. 1524년 예루살렘으로 떠난 성지순례에서 시력을 잃었다 되찾는 기적을 체험한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우르술라회를 설립하고 여성교육에 매진했다. 성녀는 1807년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시성됐다.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4(5)~1274. 이탈리아 출생 및 사망. 사제. 신학자. 성인은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한 중세 최고의 신학자로 꼽힌다. 어려서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가족들 반대를 뿌리치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성인은 파리와 독일에서 공부하며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제가 됐다. 그가 집필한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명저로 지금까지도 가톨릭교회 가르침의 바탕이 되고 있다. 성인은 1880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모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