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민구]
과학벨트는 지역정치벨트 아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많은 국민이 과학기술에 관심이 적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과열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기초과학의 획기적 진흥을 통해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 성장동력을 마련할 목적으로 2009년 2월 관련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세종시 문제 등으로 2년 가까이 표류하다 지난해 12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주요 사업내용은 기초과학연구원 설립, 중이온가속기 등 대형 연구시설 설치, 과학과 산업이 융합되는 비즈니스 기반 구축이다.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거점을 구축하고 연구인력, 시설 및 성과를 활용하는 첨단 산업을 유치하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대사업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 전문가들로 구성해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및 산업체에서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의 어려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미래지향적 지식 창출 및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500∼3000명의 우수연구원을 확보하고 이 중 30%는 해외 전문가로 구성해 국제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중이온가속기를 설치해 핵물리, 신물질 등 첨단 연구를 할 수 있는 대형 연구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수한 인력과 고가의 연구시설을 활용하는 첨단 기업들을 유치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거점도 조성한다. 2009년 기준으로 7년 동안 3조5000억 원 내외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연구시설 한곳 집적해야 효율적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도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가 감소하고 있고 특히 기초과학 연구는 더 위축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에서도 R&D 투자의 경제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벌어지면서 연구결과가 국가 발전에 직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기초과학과 비즈니스가 결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소요돼 R&D 효용성 면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많은 우리나라에서 추가로 대규모 출연연구원을 설립하는 점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논쟁보다는 합리적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충청권은 물론이고 대구·경북과 경기, 전남 광주까지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과학벨트사업을 여러 지역에 나눠주는 지역적 안배는 효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 인력과 시설을 한곳에 집적시켜 학문의 융합과 공동연구를 추진해야 탁월한 연구결과가 도출되고, 산업과 연계돼야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과학벨트가 지역정치벨트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전문가들이 생활하면서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정주(定住) 여건 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초과학은 산업기술에 비해 국경이 높지 않다. 단기간에 결과를 도출하고 실용화하는 산업기술은 지적재산권 및 산업기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 공동연구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초과학의 경우는 많은 연구결과가 20∼30년 이후에나 실용화가 가능하므로 상대적으로 국제 협력이 용이하다. 특히 대형 가속기 연구 등에서는 활발한 국제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명한 외국인 전문가를 상당수 영입하면 취약한 기초과학의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지만 일류 해외 과학자를 유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외 전문가 및 가족을 위한 주택 공급은 물론이고 학교, 병원, 문화시설 등 국제적 수준의 정주 여건 조성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입지 선정에서 사용자인 과학기술자와 수요자인 기업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정치인보다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서 밤을 새워 연구할 과학기술자들과 그 결과를 활용할 기업 관계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당연히 외국인 과학기술자들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기업과 과학자의 의견 가장 중요
정부 예산을 내 돈처럼 아껴서 써야 한다. 정치적으로 건설돼 텅텅 빈 공항,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박물관과 체육관,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를 보면서 정부 예산의 효율성에 관해 우려하는 국민이 많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반드시 성공해 먼 훗날 우리나라의 새로운 희망과 미래 성장동력의 주춧돌이 돼야 한다. 연구개발의 성과, 특히 기초과학의 경우는 가시적인 결과의 도출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장구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30∼40년 후에 세금이 잘 쓰였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과학자들도 입지 선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연구 분야 발굴 및 장비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민구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mkh@snu.ac.kr
'창(窓) >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 집배원 (0) | 2011.02.24 |
---|---|
예술에 침 뱉는 예술 교수의 타락 (0) | 2011.02.23 |
한-EU FTA부터 비준해야 할 이유 (0) | 2011.02.21 |
北 ICBM 방치하면 세계평화의 재앙 된다 (0) | 2011.02.19 |
친환경 무상급식 쇼 (0) | 201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