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 교육
지난해 연말 발표된 2009년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중국 상하이의 15세 학생들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차지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중국 교육의 약진이 크게 부각된 반면 상대적으로 간과된 사실이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학력이 세계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점이다.
‘강한 교육’이 이룬 PISA 석권
이번 평가에는 중국의 간판도시 상하이와 ‘교육 강국’으로 알려진 싱가포르가 처음 참여해 관심이 집중됐다. ‘미래의 국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학력의 세계 판도를 보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읽기 부문에서 5위, 과학 4위, 수학 2위에 올라 ‘인재 국가’의 명성을 입증했다. 홍콩은 읽기 4위, 과학 수학 각각 3위를 차지했고 대만도 수학에서 5위에 올랐다. 각 분야 상위 5개국에 이름을 올린 나라들은 핀란드(읽기 3위, 과학 2위)를 빼고는 모두 아시아 국가였다.
학력 저하로 고심하던 일본은 읽기 8위, 과학 5위, 수학 9위로 2006년 PISA 때보다 순위가 상승해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한국은 읽기 2위, 과학 6위, 수학 4위로 여전히 상위권을 지켰다. 반면 미국과 유럽 학생들의 점수는 아시아 국가보다 현저하게 뒤졌다. PISA에 출제되는 문제들은 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내용이어서 ‘아시아 학생들이 암기 위주 교육을 받아 점수가 높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순위가 낮았던 국가에서는 당장 비상이 걸렸고 아시아 교육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제2의 스푸트니크 순간’을 맞았다고 밝힌 것도 아시아 교육과 관련이 있다. 1957년 소련이 미국에 앞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과학기술 개발과 교육에 전력투구해 소련을 추월할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때에 빗대어 현재의 미국이 위기에 놓여 있음을 국민에게 호소한 것이다. 미국의 이번 PISA 결과(읽기 17위, 과학 23위, 수학 31위)가 계속 저조하고 중국의 인재 양성이 위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예일대 교수이자 ‘제국의 미래’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가 ‘중국 엄마’의 장점을 소개한 책도 미국 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호랑이 엄마의 승전가’라는 제목의 이 책은 미국 엄마와 중국 엄마를 비교하면서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미국이 머지않아 중국에 뒤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엄마들은 자녀의 개성을 존중해 원하는 대로 용인하는 스타일이지만 중국 엄마들은 학교 연극 같은 것에는 절대 참여 못하게 하고 엄격한 통제를 통해 자녀에게 사회활동에 필요한 능력과 자신감을 길러주기 때문에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교육의 장점 포기 말라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평소 ‘프랑스 교육의 중심에 지식은 없고 학생들의 인격만 있다’며 지식을 강조해 왔지만 올해 들어 더 강력하게 학력 중시 정책에 나서고 있다. 내년에 1만6000명의 교사를 감축하겠다고 예고한 데 이어 높은 성과를 내는 교장에게 최대 6000유로의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이 아시아 교육을 주목하고 있는 사이 한국 교육은 오히려 특유의 강점을 허물어뜨리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 교육은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도 학부모들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대학 진학과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사교육도 마다하지 않는 경쟁 체제를 유지해 왔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긍정적인 면이 컸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은 각종 교육평가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폐지하기로 했으며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도 집단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학교에서 경쟁을 없애버리는 게 이들의 궁극적인 교육 목표인 듯하다. 정부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쉬운 수능시험, 교과서 분량 20% 축소, 내신 절대평가 등 학생들이 공부를 적게 하도록 만드는 일이라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사교육비 절반 경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이 미국처럼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한다며 학습내용을 30% 축소한 것은 1998년이었다. 2000년 PISA에서 수학 1위, 과학 2위, 읽기 8위로 최상위권에 올랐던 일본의 학력이 2006년 수학 10위, 과학 6위, 읽기 15위로 떨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8년에 불과했다. 교육의 추락은 한순간에 이뤄질 수 있다. 그나마 일본은 잘못된 길을 빨리 깨닫고 과거의 방식으로 선회해 추락 현상을 저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개혁은 아니다. 한국 교육의 장점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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