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17> 팥물밥
신선들이 ‘색깔있는 밥’ 즐긴 이유는
팥밥
밥 중에는 색깔이 있는 밥이 있다. 팥밥은 팥에서 물이 나와 붉은색이 되지만 일부러 팥물만으로 밥을 지어 색을 내기도 한다. 옛날 임금이 백반(白飯)과 함께 먹었다는 홍반(紅飯)이 그것이다. 흑미로 밥을 지어 검은 빛깔을 내기도 한다. 정월 보름이나 잔칫날 주로 먹는 약식도 흑설탕 등으로 일부러 색을 내서 먹는 밥이다.
밥에다 색을 입히는 것은 고운 빛깔로 입맛을 돋우고 영양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한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f)이라는 한자가 있다. 색깔이 있는 밥이라는 글자다. 자전에는 약초로 색을 낸 밥이라고 풀이했는데 강희자전에서는 오반(烏飯)이라고 했다. 까마귀 오에 밥 반자니까 까마귀 깃털처럼 검다는 뜻이다. 일명 청정반(靑精飯)이라고도 한다.
오반은 보통 밥이 아니다. 도교에서 신선이 먹는다는 밥으로 계속 먹으면 신선처럼 오래 살 수 있고 양기가 돋는다고 했으니 쉽게 말해 회춘을 하는 밥이다. 신선이 먹었다는 밥이니 전설에 보이는 밥 같지만 실제로 사람이 먹었던 밥이다.
당나라 때 의사로 본초습유(本草拾遺)라는 의학서를 쓴 진장기가 오반 짓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남방에서 자라는 남천촉(南天燭)이라는 나무의 줄기와 잎에서 즙을 짜내 쌀에다 붓고 아홉 번을 찐 후에 아홉 번을 햇볕에 말리면 쌀알이 검어지며 진주처럼 작고 단단해진다고 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멀리까지 갈 수 있다고 했으니 장기 보관용 식량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나라 무렵 오반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오반은 몸에 좋은 밥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명나라 때 학자인 장자열이 쓴 정자통(正字通)에는 오반을 약초로 지은 밥이라고 했는데 검은빛이 돈다고 했다. 보양식으로 여긴 듯하다. 이시진도 본초강목에서 버드나무와 오동나무의 잎으로 색깔을 낸 밥이라고 하면서 본래는 도가에서 신선들이 먹던 밥이지만 지금은 석가탄신일에 부처님께 공양하는 밥이라고 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 역시 까마귀 깃털처럼 검은 색깔의 밥은 버들잎이나 오동잎으로 빛깔을 내는데 이 밥을 먹으면 양기를 돋우기 때문에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도교에서 귀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산림경제(山林經濟)의 저자인 홍만선도 버드나무 잎으로 검은 빛깔을 낸 오반을 먹으면 양기의 순환이 원활해진다고 설명했다.
옛날 사람들은 밥에다 팥물이나 흑미, 간장, 약초 등으로 색깔을 내면서 신선들이 먹었다는 오반을 흉내 내려고 했던 모양이다. 대표적인 예가 약식이다. 약식의 유래가 나오는 삼국유사에는 단지 찹쌀밥으로 제사를 지낸다고만 나온다. 그런데 고려 말 이색은 시집에서 찹쌀밥을 꿀(밀·蜜)에 버무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간장으로 색깔을 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는 약밥을 밀반홍(蜜飯紅)이라고 표현했는데 꿀에 버무린 밥(蜜飯)에 붉게 착색을 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붉게 물들인 팥물밥인 홍반이나 꿀에 버무린 밥을 착색한 약밥, 혹은 검은 빛깔이 나도록 흑미로 지은 밥에는 이렇게 신선들이 먹었다는 오반처럼 색깔을 입힌 밥을 먹고 젊음을 유지하려는 소망을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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