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16> 사탕
특권층에만 허용됐던 ‘달콤한 알약’
화이트데이에는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데 사탕은 본래 과자가 아니라 약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선물한 사탕이 사랑의 묘약으로 작용하면 좋겠다.
사탕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사탕을 뜻하는 영어 캔디(candy)는 어원이 아랍어이고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인도어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발달한 과자인 사탕은 동양에서 건너간 것이다. 옛날에는 사탕이 과자가 아니라 주로 약으로 쓰였다. 지금은 비만의 주범으로 눈총 받지만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약에서 발전해 사탕이 됐다. 마지막으로 사탕은 약 200년 전까지만 해도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면 먹을 수 없었던 값비싼 식품이었다.
영어 캔디의 어원을 따져보면 사탕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입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캔디는 원래 슈거(sugar)캔디를 줄인 말인데 캔디의 어원은 아랍어 깐디(qandi)다. 아랍에서 만든 사탕인 깐디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중세 영국으로 전해져 캔디가 된다. 그런데 아랍어 깐디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동쪽으로 인도에까지 닿는다.
어원학자들은 고대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거쳐 인도 남부의 타밀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타밀어 칸투(kantu)가 캔디라는 단어의 뿌리라고 본다. 칸투는 ‘딱딱하게 굳혔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원래 영어인 슈거캔디는 설탕을 딱딱하게 굳힌 것이라는 의미다.
캔디라는 단어에는 인도가 원산지인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이 유럽으로 전해지는 경로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설탕은 재배가 불가능한 수입품이었으니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연회와 축제 때처럼 특별한 경우에 귀족과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부유층만 동방에서 전해진 귀중한 식품인 설탕을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식품이었으니 특권층을 제외하면 먹을 수조차 없었고 특별한 경우에 의약품으로만 쓰였다. 설탕을 약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은 고대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나온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부터 설탕을 약품으로 많이 쓰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설탕 덩어리가 지금 같은 모양의 사탕, 즉 캔디로 발전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설탕을 감기와 오한 치료제로 썼는데 중세 의사들은 약의 고약한 맛을 제거하기 위해 달콤한 설탕으로 옷을 입혔다. 약의 쓴맛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탕 자체가 약이었으니 효과가 배가 되는 셈이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바로 쓴 약을 먹기 좋게 단맛의 물질로 감싼 당의정(糖衣錠)이다. 지금 군것질로 먹는 과자인 사탕, 즉 캔디는 바로 중세시대에 약으로 만든 당의정에서 비롯됐다.
사탕이 약품이었다는 흔적이 또 하나 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끝내면 사탕을 주는 것인데 옛날에는 사탕이 소화제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식후에 소화를 돕기 위해 디저트로 초콜릿과 같은 달콤한 음식을 먹는다. 초콜릿이 유럽에 전해지기 전에는 식후에 설탕 절인 것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니 오늘날 식당에서 식후 사탕을 나눠주는 것도 다 유래가 있는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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