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15> 마시멜로
이집트 파라오의 간식… 화이트데이 원조이기도
화이트데이는 엉뚱한 날이다. 전통 기념일이 아니라 업계에서 만든 날이다. 그것도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발전했다.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의 답례로 한 달 후인 3월 14일에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 화이트데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 제과업체에서 사탕 판촉행사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화이트데이는 일본캔디공업협동조합에서 1980년 3월 14일을 화이트데이로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유래는 이렇다. 1970년대 일본에서 밸런타인데이가 정착하면서 제과업체에서 초콜릿 답례품을 주는 날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제과업체의 모임인 캔디공업협동조합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졌고 1978년 나고야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화이트데이 조직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리고 2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1980년 제1회 기념행사를 열고 업체들이 대대적인 사탕 판촉행사를 실시한 것이 오늘날의 화이트데이로 발전했다.
일본캔디공업협동조합 홈페이지에 유래에서부터 준비과정과 토의내용까지 실려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협동조합의 발의로 시작됐지만 계기는 따로 있었다.
마시멜로를 만드는 이시무라 만세이도(石村萬盛堂)라는 제과업체가 1977년 3월 14일을 마시멜로데이로 정하고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의 답례품으로 마시멜로를 선물하자는 판촉행사를 연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아이디어를 캔디공업협동조합에서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로 발전시킨 것이니 화이트데이 선물의 시초는 마시멜로다.
그런데 마시멜로라는 서양과자의 유래가 또한 엉뚱하다. 씹을 때 쫀득쫀득한 촉감과 함께 달콤한 맛이 나는 캔디가 마시멜로인데 기원전 2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으며 파라오가 먹던 과자이고 의약품이었다.
마시멜로를 만드는 원료는 본래 서양 아욱이다. 동양에서는 아욱으로 아욱국을 끓여 먹지만 서양에서는 마시멜로를 만들었다. 물론 서양 아욱과 동양 아욱의 종자가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사촌쯤은 된다. 따지고 보면 마시멜로라는 이름 자체가 늪지(marsh)에서 자라는 아욱(mellow)이라는 뜻이다. 양아욱인 마시멜로 뿌리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것이 과자인 마시멜로였다.
그런데 여러 기록에서 마시멜로는 과자보다 의약품으로 많이 쓰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논문에서 마시멜로의 잎을 찧은 후 박하 열매와 섞어서 바르면 부은 것이 바로 가라앉는다며 소염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마의 네로황제 때 활동했던 의사인 아레타에우스 역시 마시멜로 뿌리의 추출물을 기름과 섞어 바르면 부은 것이 진정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양아욱인 마시멜로 뿌리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과자인 마시멜로는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과자가 아닌 의약품으로 더 많이 쓰였다. 사실 중세시대만 해도 설탕으로 만든 사탕 역시 과자가 아닌 의약품이었다는 사실을 보면 마시멜로가 약품이었다는 것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마시멜로가 과자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원료인 마시멜로, 그러니까 양아욱의 뿌리 대신 옥수수 녹말을 원료로 쓰면서 약효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화이트데이의 유래가 사탕이 아닌 마시멜로와 원료인 양아욱으로까지 이어지니 의외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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