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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파 vs 강남좌파

namsarang 2011. 3. 21. 21:32

[김순덕 칼럼]

분당우파 vs 강남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며칠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한 팔로어가 “놈 촘스키는 존경한다면서 조 교수더러 출마해라 또는 애들이나 가르쳐라 하는 이들이 참 이상하고 신기함” 하고 쓴 글을 소개하며 웃음소리까지 넣었다. 저명한 지식인과 비견돼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 같다.

“좌파의 말 아닌 행동을 따르시오”

조 교수가 ‘강남 좌파’(좌파적 발언을 하는 고학력 중산층)의 아이콘이라면 미국 ‘리무진 리버럴’(부자 좌파)의 대명사는 놈 촘스키다. ‘불량국가’ ‘정복은 계속된다’ 같은 반미·반자본주의 책에서 미국 대통령부터 다국적기업까지 거침없이 비판해왔다. 책만 보면 양심적 지성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겉과 속, 공(公)과 사(私)가 너무나 다른 게 문제다. 리무진 리버럴이라는 말도 분배 같은 좌파의 가치를 외치면서 실제론 고급차를 타고 자신의 부는 결코 분배하지 않는 위선을 비꼰 조어다. 미국에선 “이런 좌파들의 말은 따라 하지 말고, 하는 짓을 따라 하라”는 책도 나왔다.

조 교수가 말하는 공정, 정의, 복지 같은 이른바 진보 가치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스스로 강남 좌파임을 밝히고서 “자신이 속한 계급에 반(反)하는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보여준다면 대중은 좋아하고 밀어준다”(‘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라고 쓴 담대함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자기 딸을 외국어고를 거쳐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키고는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은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드는 현 교육체제를 바꾸려면 일차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던 그의 글만 믿고 따라 한 학부모나 학교가 있었다면 완전 뒤통수 맞은 거다. 딸을 외고 보내고도 ‘외고 죽이기’에 앞장섰던 노무현 정권 때의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참 많이도 닮은 사람이 ‘진보집권 플랜’을 내놓다니, 그게 어떤 정권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은 조 교수 식의 강남 좌파가 4·27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통한다고 본 모양이다. 서울 강남처럼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 가능했던 지역이었지만 1, 2년 전부터 한나라당 지지도가 떨어지는 추세다. 아파트 값은 떨어졌고, 온갖 규제는 여전하며, 정부도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경기의 강남을 자부하는 곳에 민주당이 맹목적 평등과 종북(從北)을 외치는 수구 좌파 후보를 낼 수도 없다. 조 교수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거론되다 손학규 대표 차출론이 거세진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깨어있는 우파라면 말해야 한다

여권에서 정운찬 전 총리 카드를 만지작거린 데는 그가 전혀 수구 보수적이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어쩌면 정 전 총리야말로 말로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하면서 개혁의지나 능력 없이 ‘꽃가마’만 기대했던 진짜 강남 좌파일지 모른다.

이런 강남 좌파가 분당지역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분당 사람들은 강남 좌파의 위선을 충분히 알아챌 만한 학력과 전문직, 생활수준을 갖고 있어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강남 사람들처럼 체질적으론 우파지만, 기득권 수호에만 급급하지 않다는 점에서 수구 우파와 거리가 있다. “우파가 이래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은 커졌어도 젊은 날 매료됐던 좌파 이데올로기에 미련 두진 않는다는 점에서 강남 좌파와도 다르다. 이념 대신 이익을 챙기되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중시하는 합리적 실용적인 ‘분당 우파’다.

그들이 강남 좌파처럼 자신의 신념을 외치지 않고, 강남 좌파가 틀렸다고 나서지도 않는 이유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실력 위주로 살아온 분당 우파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같은 명제는 ‘운동해야 건강하다’는 것처럼 당연해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정부나 공교육이 못해줘도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있다. 자신들이 나선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편하겠지만 그들만 못한 사람들은 몰라서,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정부나 강남 좌파를 믿다 더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당 우파는 무책임하다. 장하준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냥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한 경제학 교수도 분당에 산다.

민주당은 아파트 값이 많이 내린 분당을 겨냥해 열흘 전 리모델링 활성화 법안을 당론 발의했다. 여권에서도 비슷한 대책을 내놓을 분위기가 감지된다. 분당까지 인물 아닌 포퓰리즘으로 겨룬다면 선거 때마다 또 다른 세종시나 신공항이 넘쳐날 판이다. 여야가 어떤 후보를 내놓느냐, 분당이 어떤 인물을 선택하느냐가 ‘미리 보는 2012년 대선’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