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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음악의 힘

namsarang 2011. 3. 29. 23:47

[동아광장/임형주]

세상을 바꾸는 음악의 힘

 

 

사람들이 하는 흔한 질문 중 하나가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것이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요즘 필자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필자는 비영리재단인 ‘아트원 문화재단’을 설립해 3년째 꾸려나가고 있다.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1년 뒤부터 최근까지 예술영재 ‘멘터&멘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반짝이는 음악적 재능은 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추천을 통해 선발한 뒤 재단이 레슨비를 대납하는 형태로 한 달에 두 번씩 국내 클래식 전공 교수 혹은 강사로부터 개인레슨을 받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0명 남짓한 학생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필자 역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2명의 친구를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가르치고, 공연에 초대하며 인연을 맺고 있다. 한 명은 남자아이고 또 한 명은 여자아이인데 두 아이 모두 가정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 한 친구는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중학생이고, 또 다른 친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주변의 소개로 두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많이 어둡고 자신감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너무나 맑고 총명했으며, 가슴 깊이 성악과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꿈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

꿈 찾은 아이들, 얼굴이 바뀌어

레슨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노래를 가르쳐 줄 때마다 이들은 차츰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는 때가 잦아졌다. 꿈을 좇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레슨이 끝나면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활기차게 인사한다. 음악을 통해 변화된 이들이 레슨실 밖에서 가꾸어 갈 세상도 달라지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아트원재단의 프로그램을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점만은 똑같다고 자부한다.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꿈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엘시스테마가 세계 클래식계에서 추앙받는 젊은 마에스트로이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 등을 길러냈듯이 한 사람이더라도 재단을 통해 삶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받은 일본의 도쿄에서 칼럼을 쓰고 있다. 27일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일본의 대표적 민영방송인 후지TV의 FNS 음악 특별방송 ‘위를 향해 걷자-노래로 하나 되자 일본’ 무대에서 몇 시간 전 공연을 마쳤다. 이 방송은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위로하고 재건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노래로 응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상당수 외국인과 일본 국민마저도 방사능에 노출될까 봐 도쿄와 일본을 떠나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지금도 혹시 다시 큰 지진이 오지나 않을지, 방사능에 노출되지는 않을지 많이 두렵다. 하지만 오늘 일본 열도와 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된 생방송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 보았던 많은 사람의 눈빛은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 결정에 확신을 갖게 했다.

 

무대에서 일본 중국 싱가포르 가수와 함께 부른 노래는 2005년 아이치 엑스포 폐막 기념 콘서트에서 함께 불렀던 ‘스마일 어게인’이었다. 서로 다른 국적의 가수가 각자의 언어로 부르는 이 노래는 “당신의 미소를 다시 보길 원해요(I wanna see your smile)”라는 합창구로 끝을 맺는다. 지진으로 고통 받는 많은 일본인이 다시 미소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쓰나미 위문 공연에 日 눈물

노래를 마치자 이날 방송에 출연한 뒤 무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가수와 스태프가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다. 몇몇 가수는 눈물을 글썽였다. 일본의 원로 가수인 가야마 유조 씨와 미나미 고세쓰 씨는 “여기 있는 일본의 가수들을 대표해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와서 노래해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고, 필자와 오랜 친분을 나누고 있는 국민적 여가수인 마쓰토야 유미 씨 역시 고개를 숙이며 “한국을 대표해 와 주어서 감사하고 한국 국민 여러분께도 더불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연을 마치고 TV에서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로 집과 가족을 잃고 대피소에 모여 지내는 노인들에게 같은 처지의 이재민 학생들이 작은 합창공연을 열어 위로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들은 “아이들의 노래를 통해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듯하다”고 울먹였다. 누군가가 다시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음악은 사람을 바꾸고, 그 결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임형주 팝페라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