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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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탁희성 화백 | 김사건은 다리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모진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의 영예를 안았다. 충청도 서산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사건(안드레아, 1794~1839)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1815년에 유배형을 받은 김창귀(타대오)가 아버지고, 그해 강원도 원주에서 옥사한 김강이(시몬)는 큰아버지다.
집안은 본래 부유했지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재산을 버리고 전라도 고산, 경상도 진보, 강원도 울진 등지로 피신해 다니느라 가난해졌다. 김사건은 1815년 을해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된 뒤 마음이 약해져 석방됐다.
아버지가 유배 당한 뒤 그는 경상도로 이주해 기도와 전교, 성경 읽기에 힘쓰며 교리 실천에 열중했다. 신자 가정을 찾아 교회 서적과 성물을 전해주거나 교리를 가르치면서 다시 순교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1827년 정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된 그는 상주로 끌려가 다리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모진 형벌을 받았으나 약해지지 않았다.
다시 대구로 압송된 그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1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후 마침내 동료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1839년 5월 26일(음력 4월 14일)이었고, 그의 나이 4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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