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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랑하고 겸손한 성품인 안군심은 교회 서적을 베끼고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림 탁희성 화백 |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난 안군심(리카르도, 1774~1835)은 청년기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경상도로 이주해 살면서 교회 서적을 베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명랑하고 겸손하며 친절한 그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정성스럽게 가르쳐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지냈다. 아이들 교육에도 정성을 다했다. 기도와 묵상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으며, 1주일에 세 번씩은 대재를 지켰다.
한번은 포졸들에게 체포돼 관장 앞에 끌려나갔는데 모호한 대답으로 석방됐다. 이후 그는 그때 분명하게 신앙을 드러내지 못한 것과 용기가 부족했던 것을 후회했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안군심은 언젠가는 자신도 체포될 것을 예상하면서 한동안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돼 상주 관아로 끌려 갔다. 모진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아 대구로 이송된 그는 또 극심한 형벌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은 안군심은 8년 동안 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1835년 이질에 걸려 사망했다. 그의 나이 61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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