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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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우들을 격려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인 이경언이 한 과부에게 권면하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 | '종회' 혹은 '경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이경언(바오로, 1792~1827)은 한양의 유명한 학자 집안 태생이다. 부친 이윤하(마태오)는 당대의 유명한 학자요 외조부인 이익의 학문을 잇고 있었고, 어머니는 교회 설립에 기여한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누이였다. 1802년 한양에서 순교한 이경도(가롤로)가 형이고,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루갈다)가 누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형과 누나가 순교한 후, 경언은 어머니와 형수와 함께 지내다 22살에 혼인했다. 그는 언제나 냉담교우를 권면하고, 교우들을 격려하며, 미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열중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의 곤경을 덜어 주려고 노력했다. 경언은 명도회(明道會)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교회 서적이나 상본을 베껴 교우들에게 나눠줬다. 북경 왕래 밀사들에게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주는데 노력했으며, 회장들을 양성하는 일에도 헌신했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난 후 전주 관아에 고발된 그는 전주에서 한양까지 파견된 포졸들에게 체포돼 포도청으로 압송됐다가 조정 명령에 따라 전주로 이송됐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그는 혹독한 형벌의 여독을 견디지 못하고 1827년 6월 27일(음력 윤 5월 4일)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