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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과 KAIST

namsarang 2011. 4. 22. 23:37

[오늘과 내일/송평인]

도산서원과 KAIST

 

 

조선시대 퇴계 이황(退溪 李滉) 하면 서원(書院)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사립학교인 서당에 국가 보조를 끌어와 서원으로 발전시킨 교육 개혁가였다. 경북 풍기(현 영주)의 백운동서당을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격상시키는 데 공헌한 이가 바로 퇴계다.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예안(현 안동)에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을 지었다. 도산서당은 퇴계 사후 나라의 지원을 받아 도산서원이 됐다.

성균관이 국립대라면 서원은 국가 보조의 사립대다. 퇴계는 국립학교는 나라의 법령에 얽매여 서원만큼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봤다. 그 자신 젊은 시절 성균관에 공부하러 올라갔다가 실망이 커 곧 낙향했다. 서원은 교과목과 학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원 진흥 운동이었다.

오늘날 KAIST는 옛 성균관처럼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국립대다. 전액 장학금으로 우수한 학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강점이다. 문제는 입학 이후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교수 정년 심사 강화, 학점과 장학금의 연계 등 ‘서남표 총장식 개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퇴계와 서 총장은 출발점은 달랐지만 관학(官學)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도산서원이나 KAIST나 모두 한 시대의 최고 명문학교다. 평가와 그에 따른 상벌 없이는 경쟁력도 없다는 것은 고금(古今)의 진리다. 서원에도 성적표가 있고 성적이 나빠 퇴출당하는 학생이 있었다. 과목마다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하면 순(純)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불합격하면 불(不)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한번 불합격은 일불(一不), 두 번 불합격은 이불(二不)이었다. 보통 서원에서는 팔불(八不), 명문 서원에서는 오불(五不)이면 퇴출시켰다.

올해 KAIST에서 4명의 학생이 자살했고 그중 1명은 학점 미달로 인한 장학금 삭감에 고민했던 경우다. 경쟁력 제고는 멈출 수 없다. 다만 경쟁의 강화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배려와 함께 가야 한다. KAIST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로 하는 학교지만 어릴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경쟁에만 내몰려온 학생들이 많은 만큼 인성(人性)교육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옛 도산서원은 수신(修身)을 주로 하는 학교였다. 그제 마침 ‘신(新)도산서원’이라고 할 만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옛 도산서원 뒷산 너머 퇴계 종택 인근에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새로 문을 열었다. 이참에 KAIST 학생들에게 며칠간이라도 수련원 입원(入院)을 권해보고 싶다. 멘터니 뭐니 해서 상담을 강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공부하는 자세 역시 퇴계에게 배울 게 많다.

 

무엇보다 성적에 실망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퇴계가 아들 준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의 재능이 우월함에도 남의 밑에 놓이는 대우를 받는 것은 해로울 게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나의 재능이 보잘것없음에도 불구하고 요행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이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옛 사람은 비록 자신을 꾸짖는 것을 귀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거나 절박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인간성 넘치는 퇴계의 말도 귀 기울여 봄 직하다.

―안동 도산서원에서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