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 사활건 인연 ‘4년만의 해후’
몸에 폭탄 박힌 부상병… 헬멧 방탄조끼 입고 살려낸 군의관…
16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4년 만에 만난 한국계 미국 군의관 존 오 중령(오른쪽) 과 차닝 모스 전 일병. 애틀랜타=연합뉴스
16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는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2006년 3월 포탄이 빗발치던 아프가니스탄전쟁 현장에서 군의관과 부상병으로 만났던 한국계 미국 군의관 존 오 중령(40)과 차닝 모스 전 일병이 4년 만에 다시 만난 것.
당시 소령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 야전병원에 근무하던 오 씨는 두 시간 동안의 수술 끝에 미 육군 10산악사단 소속 모스 일병을 살려냈다. 모스 일병은 순찰근무 중 탈레반의 로켓추진 총유탄(RPG) 공격을 받아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폭탄 뇌관과 기폭장치가 박힌 채 응급 후송됐다.
미국 육군 규정은 폭탄이 몸에 박힌 군인의 경우 제거 수술 중 폭탄이 터지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병실이 아닌 벙커에서 응급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모스 일병을 벙커에 두면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오 소령은 모스 일병을 병실로 옮긴 뒤 “(병실에서) 모두 나가(Everybody get out)”라고 외쳤다. 그리고 의무병과 함께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은 채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에는 폭탄제거팀도 참여했다. 이후 모스 일병은 미국으로 후송돼 후속 수술로 완치됐다.
이 수술로 2007년 1월 비교전 상태에서 동료 군인의 생명을 구하는 영웅적 행동을 한 미군에게 수여하는 ‘군인훈장(Soldier's Medal)’을 받은 오 소령은 2009년 중령으로 승진해 현재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미우호협회는 오 중령을 ‘2011 새로운 미국인 영웅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이날 오후 협회 연례만찬에서 시상식을 거행했다. 사고 직후 제대를 해 가족들과 애틀랜타 인근 게인스빌에 살고 있는 모스 전 일병은 깜짝 게스트로 행사에 참석했다.
모스 전 일병은 “폭탄이 터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수술을 통해 내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며 오 중령을 뜨겁게 안았다. 오 중령은 “군의관으로서 본분을 다했을 뿐”이라며 “모스 일병과 같은 군인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말했다. 한미우호협회는 오 중령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줬고 모스 전 일병의 모교에는 5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메릴랜드로 이민 간 오 중령은 1993년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육군장학금으로 1998년 뉴욕 메디컬스쿨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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