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경석]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공존 가능한 시스템’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다 보면 항상 눈에 띄는 게 있다. 대한문 옆 돌담을 따라 진열된 서각작품이다. 정밀한 조각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작품을 제작한 주인공이 오른손이 없는 지체3급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손이 없는 오른 팔목에 조각망치를 압박붕대로 동여맨 채 조각도를 왼손에 쥐고 17년째 한결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조규현 씨(51)다.
조 씨는 열 살 때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중 군용트럭이 자신을 덮치는 바람에 오른손목 아래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그는 좌절감에 방황도 많이 했다. 막노동판에서는 손이 없어도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삽을 들고 가 현장반장 앞에서 삽질부터 해보였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20여 년 전 배운 조각으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게 됐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벌써 31회째를 맞이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사례는 이미 당연한 일처럼 굳어 버린 지 오래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는 251만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국내 장애인 실업률은 8.3%로 전체 실업률보다 갑절 이상 높다. 실업 장애인 중 65.9%는 고령과 장애로 인해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든 실정이다. 취업 장애인들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근로소득은 월평균 115만6000원에 불과하다. 지적장애인은 23만2000원밖에 벌지 못한다. 아직까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싸늘한 사회의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서울시가 마련한 장애인 예술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두두두(Do, Do, Do)’가 대표적인 사례. 시는 장애인의 예술적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시는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에게는 예술을 선사하고 장애인에게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일 전국 곳곳에서 장애인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대부분 사회에 귀감이 되는 장애인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이들을 격려하는 행사다. 일반인이 휠체어를 타보는 등 장애 체험을 하는 행사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에게는 이런 일회성 행사보다 일자리를 늘릴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한 게 아닐지 곱씹어 볼 일이다. 그게 안 된다면 조 씨가 문전박대를 당한 불합리한 환경이라도 없어졌으면 한다.
강경석 사회부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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