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하지현]
결코 가볍지 않은 수다의 힘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론∼이라니?”
“하려는 말이 뭐냐는 말이야.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고.”
“어쩌자는 말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어서…. 그러면 안 돼?”
“답도 없는 말을 오래 하니까 피곤해서 그런 거지.”
영수 씨는 아내 미영 씨가 벌써 20분째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게 힘들다. 회사에서 사사건건 일에 태클을 거는 상사가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던 일이었다. 이번에도 준비한 기획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회의시간에 부정적인 말만 하면서 씹어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줄로 정리하면 될 얘기를 알고 싶지 않은 그 상사의 생김새, 옷차림, 평소 말버릇, 집안 배경까지 다 합친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들어야 한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것인지, 확 들이받든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둘 것인지. 구체적인 결론이 없는 대화는 공허할 뿐이라는 게 영수 씨의 지론이다.
미영 씨는 이런 영수 씨에게 무안하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미영 씨가 이렇게 맥주 한잔 하면서 수다라도 떨어야 속이 시원해지고, 무슨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가요가 떠오르며 거리감을 확 느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이 그렇게 중요해?’
“그래서 결론이 뭐야” 묻는 사회
이는 두 사람이 수다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누가 잘했고 못 했고가 아니라 이해의 차이 문제다. 한쪽은 수다는 쓸모 있는 알맹이 정보가 없는 쭉정이 노이즈의 공허한 오고 감이라고 여긴다. 속 빈 강정 같은 소통의 전형이요, 시간 낭비다. 다른 한쪽은 수다를 휴식의 하나이자 중요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삼고 있다. 꼭 무슨 답을 얻기 위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감정과 생각을 자유연상을 하면서 그날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자기 치유적 노력이다.
나는 ‘수다 떨다’는 말이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듯이 입이 가벼운 사람들의 경박한 대화라고만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오랜 기간 관계와 소통에 대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수다는 소통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떠다니는 자유 유영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 현대 사회의 소통은 효율성과 정확성을 추구한다.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자기 의도를 잘 전달하기를 바란다. 덕분에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한편 최대한 정확하고 빠르게 손실 없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소통만 추구하면 쉽게 피곤하고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이럴수록 역설적으로 수다의 가치는 커진다. 왜냐하면 수다란 중립적이고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목적 없고 결론 없고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 지속적인 소통이기 때문이다. 수다에는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다. 무중력 공간을 오고 가는 진자의 운동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을 수다를 떨고 나면 별로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고 입은 아플지 모르지만 왠지 모를 만족감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서로 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시작하는 수다가 주는 상대방에 대한 우호와 신뢰의 확인이 관계의 긴장을 무장 해제시켜 주기 때문이다. 잘 모르던 사람, 나이 차가 나는 분과 우연히 동석을 해서 수다를 나누다 보면 쉽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경험을 여러 번 해 봤을 것이다. 사전 검열 없이 느끼는 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한다는 것, 그것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자유연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수다를 통해 억압되었던 무의식의 갈등이 나도 모르게 치유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수다를 통해 서로에게 치유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무슨 말이건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도 괜찮고,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큰 힘이자 행운이다.
잡담이 가진 소통과 치유 효과
이 같은 수다의 긍정적 의미를 이해한다면 위의 영수 씨도 앞으로는 수다를 허투루 여기면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수다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것은 경박한 사람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현대사회에 나름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오직 효율과 속도, 정확성만을 추구하며, 경쟁의 긴장을 한 시도 늦추기 힘든 현대사회의 소통에서 수다는 잠시 공회전을 통해 쉬어가는 쉼표이자 상호 신뢰를 확인하는 일상의 제의적 의식(儀式)이라고 볼 수 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도 잠시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동료들과 수다 한판을 하려 한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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