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갖은 고문을 당한 끝에 십자가에 못 박혀 세 시간이나 달려 있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인데, 왜 그렇게 죄인처럼 당하기만 하셨을까? 예수님이 패배한 것인가? 죽음으로 끝장나버린 것인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죽은 후에 부활하리라는 예언이 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었기에 3일을 기다려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끝나버림으로써 패배하실지, 아니면 예언대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지,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 아들인지 3일 후에 판결이 날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늦었다고, 돌이킬 수 없이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바보 같이 무능하게 죽은 사람이 부활은 무슨 부활이야?"하고 체념한 듯합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계속 패배하는 것 같던 예수님 삶이 마지막에 가서는 승리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던 예수님 가르침이 결국은 옳았음이 증명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때, 조롱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안 할 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을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죄악이 승리하고 죽음이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진리가 패배하고 사랑이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악은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승리하지 못했고, 세상이 이기는 것처럼 보였을 뿐 이기지 못했습니다. 패배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랑이 승리했고 정의와 진리가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패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승리하고 신앙생활은 손해만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남이 나에게 피해를 줘도 앙갚음하지 말아야 하고, 남이 나를 미워해도 같이 미워할 수 없고 그저 양보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기에 늘 손해만 입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먹고 살기도 힘든데 헌금과 교무금 내야지, 가난한 사람들 도와줘야지, 돈으로만 따져봐도 손해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봉사하고 희생해야지, 이 좋은 날씨에 등산도 낚시도 놀러 가지도 못하고 부활미사에 나와야 하니 세속적으로 볼 때 손해투성이 같습니다.
맞습니다. 세속적으로 볼 때 예수님을 따르면 그분처럼 패배하고 조롱당하고 손해보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마지막에 가서는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뜻이고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 신앙생활 결론이고 근거이며 희망의 보장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도 부활을 믿으셨기에 낙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고통스럽고 큰 손해를 보더라도, 악에 패배를 당하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임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을 믿었던 우리 순교자들은 죽는 순간에도 슬퍼하기는커녕 마치 상이라도 받으러 나가는 사람처럼 웃으며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죽지만 영원히 산다"고 기뻐했고, 무식한 촌부들까지도 기쁘게 노래 부르며 죽을 수 있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참 신앙인은 아무리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기뻐할 줄 아는 낙관주의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슬퍼하는 신앙인, 비관적인 신앙인은 부활 신앙인이 아니고 참 신앙인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동안 실천해온 작은 진실과 하찮은 사랑이 푸대접 받아 헛수고처럼 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는 확실히 기억되고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부활해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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