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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역사가 되고, 국사교육이 되면

namsarang 2011. 4. 26. 23:00

[동아광장/강규형]

신화가 역사가 되고, 국사교육이 되면

 

 

로마문명 강의를 하면서 암늑대가 쌍둥이 인간 형제(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키우고, 이들이 커서 자기 원래 가족의 복수를 하며 세운 나라가 로마라는 건국신화 얘기를 하면 학생들은 터무니없다며 웃는다. 그러면 나는 우리 민족기원신화인 단군신화와 비교해 보라고 한다. “곰과 호랑이가 마늘을 먹으며….” 학생들은 더 크게 웃는다. 필자는 다 커서까지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진짜 탄생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가 실제로 탄생한 것은 AD 1년도, 12월 25일도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실 신화와 역사의 구분은 모호했다. 그런데 19세기 근대역사학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폰 랑케는 사료에 충실하게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라고 가르쳤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랑케의 절대주의적 실증사관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했기에 후세 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는 역사와 신화를 분리했고 역사를 학문의 위치에 정립시켰다.

그런데 국사교과서들을 보면 아직도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 현행 국사교육은 랑케 이전 수준인지도 모르겠다는 탄식이 나온다. 요즘 들어 “다시 랑케로 돌아가자”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새 한국사교과서들은 이전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다 언급하기 숨찰 정도로 왜곡 편향기술이 많다. 암기 위주의 편성도 여전하다. 전문가가 읽어도 지겨운 책을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할 수 있나. 그중 신화가 역사로 둔갑한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신화와 역사를 구분 못한 서술

동학농민운동 항목에서의 폐정개혁안 12개조는 ‘역사소설 동학사’에서 인용된 것으로 사료로서 논란의 대상이다. 그중 ‘토지는 균등하게 나눠 경작하게 할 것’이란 문항은 다른 어떤 진짜 사료에도 나오지 않는 주장이다. 동학농민운동에는 공인된 농민군의 좋은 사료도 많다. 그런데도 일부 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가 문제의 토지균작 항목을 교과서에 존속시키려 목숨 걸고 달려든다. 그 항목 없이는 허물어질 만큼 취약한 도그마에 매달리는 폐쇄성을 느낀다. 거대한 자폐적인 동굴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그게 꼭 있어야만 내재적 발전론의 근현대사 체계가 지탱될 정도로 허약한가. 이런 선동적인 얘기를 해야 학생들이 좋아하고 예전부터 교과서에 있었던 내용이니 꼭 들어가야 한다는 한 고등학교 국사교사의 말을 들으면서 느꼈던 황당함이란….

신천학살 사건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북한 ‘아지프로(선전선동)’의 산물이었다. 실제 황해도 신천에서 학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역의 좌우대립에서 일어난 것이지 북한의 대외적인 선전선동이 주장하는 미군과 국군의 학살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피카소는 북한 선전에 휘둘려 격분해서 이 그림을 그렸고 미군의 학살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남침론을 부정했던 브루스 커밍스의 책 표지에도 실린 그림이다. 이것은 한 교과서가 교묘히 왜곡 표현한 것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전쟁을 비판한 작품”이 아니다. 많은 교과서 시안이 사전에 짜맞춘 듯 이 사진을 매우 크게 걸어놓았고, 어떤 시안은 미군이 자행한 학살의 예로 들었다. 결국 이 사진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두 교과서에 실렸다. 은연중 아지프로에 놀아난 셈이다. 이 외에도 친(親)북한 체제적 서술은 무수히 많다.

나는 (원래 역사교과서로 간행되기로 했던) 한국사 교과서 검인정 1차과정인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2차과정인 검정과정을 통과한 문제 내용이 상당수 교과서에 수록됐다. 교과서에 들어갈 사실 내용을 표결로 결정한다는 것이 온당한가. 교과서의 문제점을 놓고 역사교육학계와 국사학계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까지 보인다. 탈락한 일부 교과서는 현행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배고프다고 상한 음식 먹일 건가

저번 주말에 고등학교 과정 국사필수화와 공무원 임용과정 및 고시에 국사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국사 필수화와 역사교육 강화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수화하고 시험에 포함한다고 해서 역사의식과 국가관과 세계관이 바로잡힌다는 것은 얄팍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만약 국사교육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 국가관이 나빠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것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면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오래돼서 상한 음식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효용성이 다하고 낡아빠졌으며 왜곡된 정보로 가득 찬 한국사를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필자가 주장했듯이 현행 국사교과서 체계의 효용은 예전에 끝났다. 낡은 체계를 새로 고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문제다. 그러나 틀린 사실을 바로잡는 것은 가능하다. 국사 필수화를 성급히 시행하기 전에 현행 교과서의 중장기 및 단기 개정 작업부터 했어야 옳은 순서였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