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35> 약과
꿀에 버무린··· 과일을 본떠서 만든 과자
우리 고유의 과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약과다. 평소에도 즐겨 먹지만 제사 때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과자다. 지금은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먹는 약과지만 알고 보면 적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선 약과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한글로는 별 이상할 것이 없지만 한자 뜻을 새겨보면 독특하다. 약 약(藥)자와 과일 과(果)자를 쓴다. 과자를 과일이라고 하고 약이라고 덧붙였다.
정약용이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과자인 약과를 과일이라고 한 것은 대추, 밤, 배, 감 등의 과일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과일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둥글면 제사 때 그릇에 쌓아 놓을 수가 없어 지금처럼 평평한 모양으로 변했다고 했다. 제사상에서 약과는 과자이면서도 과일과 과일 사이에 놓는데 약과가 인공으로 만든 과일, 즉 조과(造果)이기 때문이다.
약(藥)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이유에 대해서 정약용은 우리말에서는 꿀을 약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원래 꿀로 담근 술이 약주이고 찹쌀을 꿀에다 버무린 것인 약밥이며 밀가루를 꿀에 버무려 과일처럼 빚은 과자가 약과다.
제사상에는 반드시 약과를 놓는다. 이유는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 노래인 초혼부(招魂賦)에 신하가 죽은 임금을 그리워하며 ‘거여’와 ‘밀이’라는 음식을 차려 놓았으니 돌아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거여와 밀이는 밀가루로 만든 떡에 엿과 꿀을 발라 말린 음식이라며 이를 약과의 원형으로 보았다. 그러니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초혼의 음식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은 약과가 평범한 한과지만 예전에는 잔칫날이나 제삿날 아니면 먹지 못했던 음식이다. 밀가루가 쌀가루보다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귀한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고 버무려 만든 약과 때문에 낭비와 폐해가 많았던 모양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국가에서 민간인은 함부로 약과를 만들 수 없다고 제조금지 조치까지 내린 적도 있다고 했다. 정조 때 경국대전을 재정비한 대전통편에 ‘민간인이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약과 등의 유밀과를 사용하면 곤장 8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새롭게 추가됐다고 적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어느 문헌에도 약과를 만들었다가 곤장 맞았다는 기록은 없으니 실제로 집행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약과가 그만큼 사치품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한과의 대표주자인 약과는 고려와 조선시대 때 중국에서도 유명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고려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나라에 머물 때 황실이나 조정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면 고국에서 약과를 선물로 가져갔는데 맛이 좋아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의 대표 한과인 약과가 예전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정도로 발달한 이유에 대해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고려시대 불교와의 관계를 꼽고 있다. 실제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 때 약과가 놓여 있지 않았다고 큰일이 난 것처럼 기록한 부분이 보인다.
여기서 보듯 약과는 고려에서 불공을 드릴 때 쓰는 음식으로 발달했는데 이는 육식을 금지하는 불교에서 제례를 지낼 때 고기나 생선을 쓰지 않고 과일과 곡식으로 대신하면서 약과를 중요한 제례음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