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
<37> 홍어삼합
홍어 빠지면 잔치도 아니라는데…
삭힌 홍어에다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를 곁들여서 함께 먹는 음식이 홍어삼합이다. 대표적인 전라남도 음식인데 삭힌 홍어의 톡 쏘는 맛 때문에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먹는 사람은 쉽게 젓가락을 대지 못할 정도로 맛이 독특하다.
전라도에서는 옛날부터 홍어 빠진 잔치는 아무리 잘 차렸어도 먹을 것이 없는 잔치라고 할 정도로 잔칫상에서 홍어가 빠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잔칫날이 다가오면 미리 홍어를 사다 퇴비나 장독대 항아리에 묻어놓고 삭혔다. 그러면 홍어 몸속의 요소(urea) 성분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암모니아로 변하면서 코를 톡 쏘는 강렬한 맛이 생긴다. 여기에 맛을 들이면 홍어 없는 잔치는 먹을 것 없는 잔치라고 흉을 볼 정도로 홍어 마니아가 된다.
그렇다고 전라도 사람들이 모두 홍어를 삭혀 먹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흑산도를 홍어의 본고장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흑산도 홍어가 가장 좋다고 했다. 하지만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삭히지 않고 먹는다. 바다에서 갓 잡은 만큼 회로 먹는 것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반면 홍어가 흑산도를 떠나 전라도 내륙지방으로 넘어오면 홍어회보다는 코끝을 톡 쏘는 삭힌 홍어를 더 별미로 친다.
옛날부터 삭힌 홍어는 흑산도가 아니라 나주, 그것도 영산포가 본고장이라고 했다. 흑산도에서 귀양을 살며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쓴 정약전은 나주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적었다.
알려진 것처럼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광주가 전남의 중심지이지만 옛날에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를 합쳐서 전라도(全羅道)라고 불렀을 만큼 나주가 요충지였다. 고려와 조선의 조정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을 펴면서 흑산도 주민을 전남의 중심인 나주 영산포로 이주시켰다. 이들이 옮겨오는 과정에서 배에 실은 홍어가 삭았는데 그 맛이 더 좋아 영산포가 삭힌 홍어의 본고장이 됐다.
그런데 삭힌 홍어에다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 김치를 더해 먹는 삼합이 생기게 된 배경도 재미있다. 전라도에서 홍어가 빠지면 제대로 차린 잔치로 쳐주지를 않는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전에도 홍어는 값싼 생선이 아니었다. 때문에 잔치에 온 손님들이 홍어만 집어 먹으면 염치없어 보일까 봐 눈치를 봐가며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싸서 먹었다. 먹다 보니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묵은 김치가 조합을 이루면서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절묘하고 새로운 맛이 느껴졌다. 그래서 맛이 최상의 조합을 이뤘다는 뜻에서 홍어삼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물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삼합(三合) 하면 보통 홍어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함께 먹어 생긴 이름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삼합이란 명리학에 나오는 용어다.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예컨대 하늘과 땅, 사람이 어우러져 우주를 생성한다는 것이 삼합의 개념이다.
홍어삼합도 성질과 맛이 각기 다른 세 가지 재료가 합쳐지며 본래의 맛과는 다른 조화롭고 새로운 맛이 창조됐다는 의미다. 삼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이 몇 가지 더 있으니 홍합, 해삼, 쇠고기를 넣고 끓인 미음인 삼합미음이나 홍합 해삼으로 만든 한과인 삼합정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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