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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最古 세계지도 ‘강리도’를 아십니까

namsarang 2011. 5. 14. 23:47

[문화 칼럼/조지형]

현존 最古 세계지도 ‘강리도’를 아십니까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에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세계지도가 전시됐다. 이 지도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기 80여 년 전에 이미 중국이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세계지도였다.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세계사적 정체성이 유럽의 식민지로 출발한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떳떳이 교역한 평등의 역사였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이 지도는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세계지도의 사본으로, 전 일본 총리 고 오부치 게이조가 남아공 국회의장에게 선사한 것이다. 일본 학자에게 자문하여, 남아공은 이 지도의 제작자가 명나라 지도제작자 취안진과 리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명의 황제가 이 지도를 중국에 온 조선 사신에게 하사했으며 임진왜란 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빼앗아 일본으로 가지고 가 오늘에 전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세계지도는 다름 아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강리도)였다. 강리도는 태종 2년인 1402년에 명나라 사람이 아닌 조선의 권근(權近)이 발문을 쓰고 이회(李회)가 지도를 제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중국어로 발음하면 권근과 이회는 취안진과 리후이가 된다. 당연히 명나라 황제가 조선 사신에게 하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허구이며 거짓이다.

임진왜란때 넘어간 우리 문화유산

남아공의 담당자에게 항의 e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은 냉담했다. 자문에 응한 일본 학자에게 문의하라면서 그의 e메일 주소를 알려왔다. 강리도를 전시할 때, 한국 외교관도 참석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전시가 끝났으며 앞으로 전시 계획이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전시를 다시 하게 되면 수정하겠노라고 알려왔다.

전 세계적으로, 강리도는 아프리카 최남단까지 보여주는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지도다. 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금속활자의 직지심경에 대해서는 두 줄 남짓 언급하면서도 강리도에 대해서는 두 페이지를 할애하여 총천연색으로 게재하기도 한다. 세계사적으로 이토록 중요한 지도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는 무엇보다도 세계사의 맥락을 잃어버린 우리 역사문화의 고립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과천과학관조차 강리도를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 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폄하한다. 이 명칭은 강리도의 세계사적 의미를 완전히 도외시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스스로 격하시킨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만든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는 세계사적 의미가 더욱 깃들어 있는 인도 서쪽부터 유럽과 아프리카까지의 지역을 삭제한 채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올해 나온 한국사 교과서들도 국정 국사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 하며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는 강리도를 제시하면서 중국인의 세계 인식을 설명하라는 과제를 내고 있어, 강리도의 정체성까지 왜곡하고 있다.

강리도에 있는 조선부분도는 우리나라 지도로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는 1557년과 1558년 사이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邦域之圖)를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지도라고 하면서 홍보물까지 만들어 배포한다. 직지(直指)는 고인쇄박물관을 세우며 2015년까지 18억 원을 투입해 고려시대 금속활자 직지 복원사업까지 추진하면서도, 강리도는 제대로 된 국가적 사업은커녕 이렇다 할 연구 사업조차 없이 무한 방치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홀대하는데 남들이야 말할 것 없다.

 

글로벌 시대에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문화강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세계지도를 일본 총리가 자기 나라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한 이 비참한 사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강리도를 남아공에 전달해 줌으로써 획득한 아프리카에 대한 일본의 외교적 성과와 잠재적인 경제적 이득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앞에 두고도 우리의 것인지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지적 태만과 천박함을 비교해 보라. 세계 경략(經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한국의 세계사적 맥락과 글로벌 차원의 역사를 함께 다루는 세계사 전문가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

외국선 인정받는데 한국선 폄하

외국으로 나가면 국사는 세계사가 된다. 세계사는 세계인들이 문화자산의 획득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며 때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다. 글로벌 교육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존경과 신망 그리고 자긍심의 무형 자산을 가지고 무한경쟁의 세계무대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글로벌 전략이자 글로벌 교육이다. 편협한 일국사는 글로벌 가치와 매력을 상실한 상품처럼 문화의 세계 시장에서 헐값에 팔릴 수밖에 없다. 뿌리 없는 벼락부자의 나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세계에 기여한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 브랜드를 일으켜야 한다. 이제, 한국사는 한국인만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역사가 되어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지구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