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할 때 겨자씨를 본 적이 있다. 성경에서 비유로 자주 등장하는 겨자씨의 크기는 1~2mm로 정말 작았다. 이렇게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2m가 넘는 겨자나무가 된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겨자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씨앗은 그 크기가 매우 작고, 무게가 얼마 안 나간다. 그 모양은 바람과 물, 동물 등에 의해 쉽게 옮겨질 수 있도록 생겼다.
씨앗의 수명은 매우 다양하다. 짧게는 몇 주일밖에 살지 못하는 것도 있고, 길게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사는 것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경남 창녕 우포늪 바닥에서 창포씨앗이 발견됐는데, 이 씨앗은 탄소연대 측정 결과 1100여 년 전인 후삼국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창포씨앗은 천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생명력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고, 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씨앗은 생명과 생식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씨앗이 지니는 가장 큰 상징적 의미는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씨앗 중에서 겨자씨가 가장 작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가장 작은 것의 상징으로 비유하신 이유는 갈릴레아 호수 근처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이 바로 겨자나무였기 때문이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2).
바오로 사도는 부활 때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을 설명하면서 다 자란 식물과 씨앗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1코린 15,37).
성경에서 씨앗은 귀중함을 상징한다. 씨앗은 농업에 의존했던 고대사회에서 물물교환의 주요 수단이었고, 양식과 미래 곡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씨앗은 생산품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의 가치를 가진다.
또한 씨앗은 무게와 가치를 측량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모세오경은 씨앗 양에 따른 가치와 크기를 기록하고 있다. "누가 자기 소유의 밭을 주님에게 봉헌하고자 하면, 씨앗의 분량에 따라 그 값이 매겨진다. 보리 한 호메르의 씨앗 분량이면 은 쉰 세켈이다"(레위 27,16).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선 토양과 물, 정성어린 돌봄이 필요하다. 하느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제대로 자라도록 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비유에서 가시나무나 돌밭에 뿌려진 씨앗들은 제대로 자라는 데 실패했지만 좋은 땅의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마태 13,1-8).
예수님은 또 하느님을 씨앗과 비유하기도 하셨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1요한 3,9).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씨앗의 죽음과, 그 후에 뿌리가 나고 싹이 트는 것을 신자들의 죽음과 연관지으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
▲ '씨뿌리는 사람'(반 고흐 작, 1888년) | |